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7

기 평장(奇平章)이 계제사 잔치에 불러 주심을 사례하는 글謝奇平章召赴禊宴啓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56자 · 낭독 2.9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7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美景良辰。方肆流觴之飮。下官末客。猥蒙折簡之招。退省僭榮。不勝厚恧。恭惟相國閣下。身生紈綺。職摠衡鈞。將相兼資。極門闈之燻灼。風流籍甚。寓泉石之逍遙。侔衡霍而鑿出奇峯。蹙江淮而疏開方沼。彩鴨浮沈於碧浪。翠禽嘐唳於雕籠。若此游觀。未曾聞見。及乎九陽令節。三月上除。追鄭國之遺風。方修禊事。慕蘭亭之勝集。特召嘉賓。豈繄圭竇之蹤。得與錦筵之末。伏念某。跅𧿶之士。腐蘭之儒。乃緣居近於芳隣。亦被許參於高宴。間靑林而鋪座。環流水以送柸。瑤箏錦瑟之哀彈。絃將手語。雲䯻月眉之絶艶。目與心期。輕風飄弄於舞衫。飛絮撲緣於歌扇。飮酣侵暮。倒載還家。醉夢方醒。忽若悞遊於仙府。宿酲未解。闕然阻謝於台階。第切感銘。益傾禱頌云云。

운운.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철에 바야흐로 잔을 물에 띄우는 놀이를 마음껏 벌이셨습니다. 낮은 벼슬의 말석 손님이 외람되이 짧은 편지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물러나 주제넘은 영광을 돌아보니 두터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합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상국 합하께서는 몸이 비단 집안에 나시고 직임으로 저울대를 거느리십니다. 장수와 재상의 자질을 겸하시어 문벌의 성함이 더할 나위 없고, 풍류가 자자하여 샘과 돌 사이에 노니심을 붙이셨습니다. 형산(衡山)과 곽산(霍山)에 견주어 기이한 봉우리를 쪼아 내시고, 장강과 회수를 좁혀 모난 못을 터 여셨습니다. 고운 오리는 푸른 물결에 떴다 잠겼다 하고, 비취빛 새는 아로새긴 새장에서 웁니다. 이와 같은 구경거리는 일찍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구양(九陽)의 좋은 철 삼월 상사일(上巳)에 이르러, 정나라의 남은 풍속을 좇아 바야흐로 계제사를 지내시고, 난정(蘭亭)의 빼어난 모임을 사모하여 특별히 아름다운 손님들을 부르셨습니다. 어찌 조각문이나 드나드는 자취로 비단 자리의 끝에 끼일 수 있었겠습니까.

엎드려 생각하건대 아무는 제멋대로 굴어 매이지 않는 선비요, 썩은 난초 같은 유생입니다. 다만 꽃다운 이웃에 가까이 사는 까닭으로 또한 높은 잔치에 끼기를 허락받았습니다. 푸른 숲 사이에 자리를 펴고 흐르는 물을 둘러 잔을 보냈습니다. 옥 쟁과 비단 거문고의 구슬픈 탄주는 줄이 손과 더불어 말하고, 구름 같은 쪽 찐 머리와 달 같은 눈썹의 빼어난 고움은 눈이 마음과 더불어 기약하였습니다. 가벼운 바람은 춤추는 적삼을 나부껴 희롱하고, 날리는 버들솜은 노래하는 부채에 부딪혀 붙었습니다.

술이 무르익어 저물녘에 이르러 거꾸로 실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취한 꿈에서 막 깨니 문득 신선의 관부에 잘못 놀다 온 듯하였습니다. 묵은 술기운이 풀리지 않아 어른께 사례하는 일을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다만 느꺼움이 간절하여 마음에 새기고 더욱 기울여 빌며 기립니다.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