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8

몽고 관인에게 답하는 글答蒙古官人書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481자 · 낭독 4.3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8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右啓。今月某日。忽奉鈞旨。伏蒙幕府遠涉千里。辱臨弊境。首貽誨音。欣感欣感。但所詰數段事。實非我國本意。深以此爲恐。敢布腹心。惟冀大度矜之。其所稱你者巧言語。說得我出去後。却行返變了入海裏住去。不中的人宋立章許公才那兩箇來的說詤走得來。你每信那人言語。呵返了也事。我國與上朝通好久矣。頃有宋立章者來言。上國將擧大兵。來征弊邑。其言有不可不信者。百姓聞之。驚駭褫氣。過半逃閃。城邑爲之幾空。蓋雷霆一震。天下同驚。以是予亦不能無懼。又慮些小遺民。若一旦掃地皆逋。則恐不得歲輸貢賦。以永事大國。因與不多殘口。入瘴毒卑濕之地。以求苟活耳。寧有他心耶。皇天后土。實鑑之矣。又稱達魯火赤交死則死留下來。如今你每拿縛者事。右達火赤其在京邑者。接遇甚謹。略不忤意。大國豈不聞之耶。又於列城。委令厚對。其間容或有不如國敎者。予亦不能一一知之。惟上國明考焉。其拿縛上朝使人。無有是理。後可憑勘知之。又稱你本心投拜出來迎我者。本心不投拜。軍馬出來。與我廝殺者。今聞大軍暴露原野。雖大國不諭之。其在小國。禮當親自迎犒。然弊邑之移于窅深偏地。本非上國所令。而顧不能無咎嘖。故且恐且恧。未以時展謁耳。其投拜之心一也。豈有二哉。且小國雖愚暗。旣知畏服大國之義。其嚮仰有年矣。豈於今日乃生叛逆之心耶。仰冀明鑑赦過字小。撫存外蕃。實予之望也。無任云云。

아룁니다. 이달 아무 날에 홀연 존귀하신 뜻을 받들었습니다. 삼가 막부께서 천 리를 멀다 않고 건너와 저희 지경에 이르시어 먼저 가르치는 말씀을 주시니 기쁘고 고맙습니다. 다만 따져 물으신 여러 조목은 참으로 우리나라의 본뜻이 아니어서 이를 몹시 두려워합니다. 감히 속마음을 펴니 오직 큰 도량으로 가엾이 여겨 주소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교묘한 말로 우리를 나가게 한 뒤에 도리어 마음을 바꾸어 바다 속에 들어가 산다」 하셨고, 또 「변변찮은 자 송립장(宋立章)과 허공재(許公才) 두 사람이 와서 거짓말을 하고 달아났는데 너희가 그 사람들 말을 믿고 돌아섰다」 하셨습니다.

우리나라가 황제의 조정과 좋게 지낸 지 오랩니다. 지난번에 송립장이란 자가 와서, 큰 나라가 장차 큰 군사를 일으켜 저희 고을을 치러 온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에 믿지 않을 수 없는 데가 있어 백성이 듣고 놀라 넋을 잃고 반이 넘게 달아나, 성과 고을이 거의 비었습니다. 대개 우레가 한 번 치면 천하가 함께 놀라는 법이니, 이 때문에 저 또한 두려움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 또 얼마 남지 않은 백성이 하루아침에 쓸린 듯 다 달아나면 해마다 공물을 바쳐 길이 큰 나라를 섬기지 못할까 걱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지 않은 남은 사람들과 함께 병 기운 서린 낮고 축축한 땅에 들어와 구차히 살기를 구할 따름이니 어찌 딴마음이 있겠습니까. 하늘과 땅이 참으로 굽어보실 것입니다.

또 「다루가치는 죽이려거든 죽이고 두려거든 두라 하였거늘 이제 너희가 붙잡아 묶었다」 하신 일입니다. 다루가치 가운데 서울에 있는 이는 매우 삼가 대접하여 조금도 뜻을 거스르지 않았으니 큰 나라가 어찌 듣지 못하셨겠습니까. 또 여러 성에도 두터이 대하라 맡겨 명하였으나, 그 사이에 혹 나라의 가르침대로 하지 않은 자가 있더라도 저 또한 낱낱이 알 수 없습니다. 오직 큰 나라가 밝게 살펴 주소서. 황제의 조정 사신을 붙잡아 묶는 일은 그럴 리가 없으니 뒤에 조사해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또 「네가 참으로 귀순할 마음이면 나와서 우리를 맞을 것이요, 참으로 귀순할 마음이 아니면 군사를 내어 우리와 싸우라」 하셨습니다. 이제 큰 군사가 들판에 몸을 드러내고 있다 들으니, 큰 나라가 이르지 않으셨더라도 작은 나라로서는 예에 마땅히 몸소 나아가 맞아 먹여야 합니다. 그러나 저희 고을이 깊고 외진 땅으로 옮긴 것은 본디 큰 나라가 명하신 바가 아니어서 돌아보건대 꾸짖음이 없을 수 없으므로, 두렵고도 부끄러워 제때에 나아가 뵙지 못하였을 따름입니다. 귀순하는 마음은 한결같으니 어찌 둘이 있겠습니까.

또 작은 나라가 어리석고 어두우나 이미 큰 나라를 두려워하고 복종하는 의리를 아는 터라 우러른 지 여러 해입니다. 어찌 오늘에 와서 배반할 마음을 내겠습니까. 우러러 바라건대 밝게 살피시어 허물을 용서하고 작은 나라를 사랑하시며 바깥 울타리를 어루만져 주소서. 참으로 저의 바람이니 간절하기 그지없습니다.

협주 2

壬辰九月

임진년 구월이다.

交死則死留下來 — 저본은 交이나 敎, 곧 「하게 하다」의 잘못으로 본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