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東眞)에 답하는 별지答東眞別紙
云云。夫所謂蒙古者。猜忍莫甚。雖和之不足以信之。則我朝之與好。非必出於本意。然如前書所通。越己卯歲於江東城。勢有不得已。因有和好之約。是以年前其軍馬之來也。彼雖背盟棄信。肆虐如此。我朝以爲寧使曲在彼耳。庶不欲效尤。故遂接遇如初。以禮遣之。今國朝雖遷徙都邑。當其軍馬之來。則猶待之彌篤。而彼尙略不顧此意。橫行遠近外境。殘暴寇掠。與昔尤甚。由是四方州郡。莫不嬰城堅守。或阻水自固。以觀其變。而彼益有呑啖之志。以圖攻取。則其在列郡。豈必拘國之指揮。與交包禍之人。自速養虎被噬之患耶。於是非特入守而已。或往往有因民之不忍。出與之戰。務獲官人及士卒。不爲不多矣。至今年十二月十六日。水州屬邑處仁部曲之小城。方與對戰。射中魁帥沙打里殺之。俘虜亦多。餘衆潰散。自是褫氣。不得安止。似已廻軍前去。然不以一時鳩集而歸。或先行或落後。欲東欲北。故不可指定日期。又莫知向甚處去也。請貴國密令偵牒可也。云云。
무릇 몽고라는 자들은 시기하고 모짊이 더할 수 없어 화친한다 해도 믿기에 넉넉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 조정이 그들과 좋게 지내는 것도 반드시 본뜻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앞 글에 알린 바와 같이, 지난 기묘년에 강동성(江東城)에서 형세가 부득이하여 화친의 약속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난해 그 군마가 왔을 때 저들이 비록 맹세를 저버리고 믿음을 버려 이같이 모질게 굴었으나, 우리 조정은 차라리 굽은 쪽이 저들에게 있게 하려 하였고 그 허물을 본받고자 하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처음과 같이 맞아 대접하고 예로써 보냈습니다. 이제 나라가 비록 도읍을 옮겼으나 그 군마가 올 때에는 오히려 더욱 두터이 대접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이 뜻을 조금도 돌아보지 않고 멀고 가까운 바깥 지경을 멋대로 다니며 해치고 노략질하는 것이 예전보다 더욱 심합니다. 이 때문에 사방의 고을이 성을 둘러 굳게 지키거나 물을 사이에 두고 스스로 지키며 그 변화를 살피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더욱 삼키려는 뜻을 품고 쳐서 빼앗기를 꾀하니, 여러 고을이 어찌 반드시 나라의 지휘에만 매여 재앙을 안은 자들과 사귀어 범을 길러 물리는 근심을 스스로 불러들이겠습니까.
이에 들어가 지키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백성이 참지 못함을 따라 나가 싸워 관인과 군사를 잡은 것이 적지 않습니다. 올해 십이월 십육일에 이르러 수주(水州)에 딸린 고을 처인부곡(處仁部曲)의 작은 성에서 바야흐로 맞서 싸우다가, 우두머리 장수 살리타이(沙打里)를 쏘아 맞혀 죽였습니다. 사로잡은 이도 많고 남은 무리는 흩어졌습니다. 이로부터 기가 꺾여 편히 머무르지 못하고 이미 군사를 돌려 떠난 듯합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모여 돌아가지 않고 더러는 먼저 가고 더러는 뒤처지며 동으로 가려다 북으로 가려 하므로, 날짜를 짚어 정할 수 없고 또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귀국에서 몰래 정탐하게 하심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