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29

임유(任濡) 상공이 추밀부사 이부상서를 사양하는 표任相公濡。讓樞密副使吏部尙書表。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86자 · 낭독 3.3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9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臣某言。云云。雨露無私。本不嗇汪洋之澤。甁甖有扃。恐自貽傾覆之虞。敢瀝危悰。期還成命。伏念臣。早緣科第。誤玷官班。學不熟精。無竇攸對鼮之辨。性惟質直。慕石立書馬之謙。幸沐厚恩。驟登重位。謬掌喉脣之任。略無輪翮之能。十年批鳳於唐麻。榮踰涯分。一日放鶯於王谷。望極生平。皆非由錐穎之才。第自託葭莩之幸。敢圖異奬。又集孱驅。俾綴樞司之峻資。復兼選部之重柄。若又冒處。必將疾顚。昔者庾亮受中書。乃拜章而牢讓。羊祜遷開府。亦抗表而固辭。此皆外戚之羽儀。群臣之領袖。非不任股肱之寄。猶恐生肺腑之嫌。況臣無德可稱。無勞可記。直以恩親而暴進。遽蒙官職之過崇。雖天意之至公。懼物議之喧沸。無補於國。有疑於人。伏望聖上陛下。貞日月之明。廓乾坤之度。追寢殊尤之寵。更推英偉之人。無令具臣。獨集群謗。云云。

신 아무개는 아룁니다. 운운. 비와 이슬은 사사로움이 없어 본래 넓고 큰 은택을 아끼지 않으나, 물병과 단지는 담을 바가 한정되니 스스로 엎어질 근심을 끼칠까 두렵습니다. 감히 두려운 심정을 쏟아 이미 내리신 명을 거두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은 일찍이 과거로 말미암아 그릇되이 벼슬자리를 더럽혔습니다. 배움이 익고 정밀하지 못하여 두유(竇攸)가 쥐 이름을 가려 아뢰던 분별이 없고, 성품은 오직 질박하고 곧아 석건(石建)이 말 마(馬) 자를 쓰며 삼가던 겸손을 사모합니다.

다행히 두터운 은혜를 입어 갑자기 무거운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릇되이 목구멍과 입술 같은 소임을 맡았으나 수레바퀴나 깃 같은 재능은 조금도 없습니다. 십 년 동안 임금의 조서를 다듬는 자리에 있었으니 영화가 분수를 넘었고, 하루아침에 골짜기에서 꾀꼬리가 날아오르듯 뽑히니 바람이 평생에 다하였습니다. 모두 송곳 끝 같은 재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다만 갈대청처럼 얇은 인척의 다행에 의탁한 것입니다.

감히 남다른 장려가 또 잔약한 몸에 모일 줄 생각하였겠습니까. 추밀원의 높은 자리에 매이게 하시고 다시 전선을 맡은 부서의 무거운 권한을 겸하게 하셨습니다. 만약 또 무릅쓰고 머무른다면 반드시 빨리 엎어질 것입니다.

옛날에 유량(庾亮)은 중서의 벼슬을 받자 글을 올려 굳이 사양하였고, 양호(羊祜)는 개부로 옮기자 또한 표를 올려 굳게 사양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외척의 본보기요 뭇 신하의 우두머리였습니다. 팔다리 같은 부탁을 맡지 못할 바가 아니었으나 오히려 가까운 집안이라는 혐의가 생길까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물며 신은 일컬을 만한 덕도 없고 적을 만한 공로도 없습니다. 다만 은혜와 친함으로 갑자기 나아가 문득 지나치게 높은 벼슬을 입었으니, 비록 하늘 같은 뜻은 지극히 공변되나 뭇사람의 말이 시끄럽게 끓을까 두렵습니다. 나라에는 보탬이 없고 사람들에게는 의심이 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해와 달 같은 밝음을 곧게 하시고 하늘과 땅 같은 도량을 넓히시어, 각별한 총애를 거두어 그치시고 다시 뛰어난 사람을 밀어 주십시오. 자리만 채우는 신하가 홀로 뭇 헐뜯음을 모으게 하지 마십시오. 운운.

협주 2

中謝。

여기에 중사(中謝), 곧 사례하는 말이 들어간다.

石立 — 저본은 石立이나 石建의 잘못으로 본다. 말 마 자를 쓰며 삼갔다는 옛일의 임자가 석건이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