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30

왕후가 책봉을 받은 뒤 태후께 사례하는 표王后受冊後謝大后表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51자 · 낭독 2.5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0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妾某氏言。伏蒙睿慈差降金紫光祿大夫門下侍郞平章事寶文閣大學士判戶部事太子太保李某。金紫光祿大夫守司徒中書侍郞平章事判刑部事太子小保盧某。押賜竹冊敎書別錄各一道。冊妾爲王妃咸平宮主者。椒宮正位。宜求窈窕之賢。琮璽具儀。誤及賤微之品。省循非稱。愧汗交深。伏念妾幸遘聖辰。濫陪宸極。素乏河睢之德。未符筐燕之祥。虛荷恩憐。訖微報效。敢圖睿眷。不捐箕箒之勞。驟霈洪私。俾受褘褕之寵。爲榮莫大。何德以堪。此蓋伏遇王大后殿下功茂塗山。賢躋大姒。早修婦道。備嘗內職之勤。雖至母臨。尙記中宮之選。肆宣異渥。庸賁孱資。妾敢不念至憂勤。躬自菲薄。恪承慈範。申孝敬於坤闈。動節禮容。免箴規於女史。云云。

첩 아무 씨는 아룁니다. 밝으신 자애로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평장사 보문각대학사 판호부사 태자태보 이 아무개와, 금자광록대부 수사도 중서시랑평장사 판형부사 태자소보 노 아무개를 보내시어 죽책과 교서와 별록 각 한 통씩을 받들고 오게 하여 내려 주시고, 첩을 왕비 함평궁주(咸平宮主)로 책봉하심을 엎드려 입었습니다.

초궁(椒宮)의 자리를 바로 하심에는 마땅히 그윽하고 어진 이를 구해야 하는데, 옥새와 갖춘 의식이 천하고 미천한 몸에 잘못 미쳤습니다. 스스로 돌아보아 걸맞지 않으니 부끄러움과 땀이 함께 깊습니다.

엎드려 생각하니 첩은 다행히 거룩한 때를 만나 외람되이 임금의 자리를 모셨습니다. 본디 물가의 물수리 같은 덕이 모자라고 광주리와 제비의 상서에 맞지 않습니다. 헛되이 은혜와 어여삐 여기심을 입었을 뿐 끝내 갚은 보람이 적었습니다.

어찌 밝으신 돌보심이 키와 비를 잡는 수고를 버리지 않으시고, 문득 큰 은혜를 쏟으시어 왕후의 옷을 받는 사랑을 입게 하실 줄 생각하였겠습니까. 영화가 이보다 큼이 없으니 무슨 덕으로 감당하겠습니까.

이는 대개 왕태후 전하께서 공이 도산씨(塗山氏)보다 무성하시고 어짊이 태사(大姒)에 오르시며, 일찍 며느리의 도를 닦아 안살림의 수고를 두루 겪으시고, 비록 어머니로 임하시기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중궁을 뽑던 일을 기억하시어, 남다른 은택을 펴시어 잔약한 바탕을 꾸며 주심을 엎드려 만난 것입니다.

첩이 어찌 감히 근심하고 부지런함을 지극히 생각하며 몸소 검박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자애로운 본보기를 받들어 곤전에 효도와 공경을 펴고, 움직임을 예의 모습으로 절제하여 여사(女史)의 경계를 면하겠습니다.

협주 3

與人分作。故數目不具。他封冊亦同。

남과 나누어 지었으므로 수효를 갖추지 않았다. 다른 봉책도 마찬가지다.

中謝。

여기에 중사(中謝)의 말이 든다.

筐燕之祥 — 앞의 河睢는 시경의 관저(關雎)이나 筐燕은 시경의 광주리(筐)와 제비(燕燕)를 따로 끌어온 것인지 한 전거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