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30

왕사(王師)가 산으로 내려가기를 청하는 장王師乞下山狀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70자 · 낭독 3.1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0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具銜云云。豐號大名。豈宜久享。殘年暮景。固合歸休。敢布危悰。仰干聰聽。伏念某襟靈暗劣。戒行迂疏。命與時來。夙躡禪門之峻級。識兼機淺。莫窮祖海之深源。曩遭聖考之中興。誤採僧流之末品。特崇師禮。勅去臣稱。如玆貶損於帝尊。蓋欲延洪於壽算。以老髡之無狀。致仙路之促期。顔厚十重。罪當萬死。其不受顯懲也大幸。又未能自責而退藏。豈意聖上陛下篤勤善繼之孝誠。無棄前朝之舊物。尙容孤跡。久贅榮途。虛承豢養之豐。蔑有潤滋之利。包羞不退。被謗亦多。今則齒已迫於耄衰。病復乘而陵觸。進不克謹趨於禁殿。退或艱例轉於伽藍。擬卜幽棲。以圖終老。伏望聖上陛下廓廻大度。曲諒哀祈。俯宣曰可之辭。許遂言歸之請。則林餐雲臥。儻延一日之生。夕火晨香。敢怠萬年之祝。無任云云。

벼슬 이름을 갖추어 적고 운운. 넉넉한 호와 큰 이름을 어찌 오래 누리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 남은 해와 저무는 빛은 진실로 돌아가 쉬는 것이 마땅합니다. 감히 위태로운 마음을 펴서 우러러 밝으신 들으심을 범합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아무개는 속마음이 어둡고 용렬하며 계율을 지키는 행실이 우활하고 성깁니다. 운명이 때와 함께 와서 일찍 선문의 높은 계급을 밟았으나, 아는 것이 얕고 근기도 얕아 조사(祖師)의 바다 같은 깊은 근원을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지난날 돌아가신 선왕의 중흥을 만나, 중의 무리 가운데 끝 품계인 자를 잘못 가려 뽑으시고 특별히 스승의 예로 높이시어 신이라 일컫는 것을 없애라 명하셨습니다. 이처럼 임금의 높으심을 덜어 낮추신 것은 대개 수명을 크게 늘이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늙은 중의 형편없음으로 신선 길의 기약을 재촉하게 하였으니, 낯가죽이 열 겹이나 두꺼워도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드러난 벌을 받지 않은 것만으로도 크게 다행인데 또 스스로 꾸짖어 물러나 숨지도 못하였습니다.

어찌 성상 폐하께서 잘 이으시는 효성에 도탑고 부지런하시어 앞 조정의 묵은 물건을 버리지 않으실 줄 생각하였겠습니까. 오히려 외로운 자취를 받아들이시어 오래 영화로운 길에 혹처럼 붙어 있게 하셨습니다. 헛되이 기르고 먹이시는 넉넉함을 받들었으나 적시고 불리는 이로움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부끄러움을 품고도 물러나지 않으니 헐뜯음을 입음도 또한 많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이미 늙어 쇠함에 다다랐고 병이 다시 틈타 들이닥칩니다. 나아가서는 대궐에 삼가 달려가지 못하고, 물러나서는 절을 차례로 옮겨 다니기도 어렵습니다. 그윽이 살 곳을 잡아 늙음을 마치기를 헤아립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큰 도량을 넓게 돌리시어 슬픈 청을 굽어 헤아리시고, 「그리하라」 는 말씀을 굽어 내리시어 돌아가겠다는 청을 이루도록 허락하십시오. 그러면 숲에서 먹고 구름에 누워 혹 하루의 목숨을 늘인다 하여도, 저녁 등불과 새벽 향으로 만년을 축원하는 일을 감히 게을리하겠습니까. 이기지 못하여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