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패(祿牌)를 내려 주심을 사례하는 표謝賜祿陴表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0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賜牋忽降。廩給周霑。亘百辟以歡欣。叩九閽而拜稽。臣等以斗筲之器。當鈞軸之司。三百取廛。徒被詩人之刺。九四覆餗。常虞易象之災。復此荷恩。祗益爲愧。臣等敢不當食念豢養之厚。期報主恩。代耕思稼穡之艱。莫爭民利。云云。
운운. 내려 주시는 글월이 문득 이르러 곳간의 지급이 두루 적셨습니다. 온 백관에 걸쳐 기뻐하며 아홉 겹 문을 두드려 머리를 숙여 절합니다.
신들은 한 말 한 되의 그릇으로 나라 중추의 소임을 맡았습니다. 삼백 몫의 곡식을 받으니 한갓 시인의 풍자를 입고, 구사(九四)에 솥의 음식을 엎지른다는 말에 늘 『주역』 상(象)의 재앙을 두려워합니다. 다시 이 은혜를 지니 삼가 부끄러움만 더합니다.
신들이 감히 먹을 때마다 기르고 먹이시는 두터움을 생각하여 임금의 은혜 갚기를 기약하고, 밭갈이를 대신하는 녹을 받으매 심고 거두는 어려움을 생각하여 백성의 이익을 다투지 않겠습니까. 운운.
협주 3
上同
위와 같다.
中謝。
여기에 중사(中謝), 곧 사례하는 말이 들어간다.
祿陴 — 저본은 陴(성가퀴)이나 牌의 잘못으로 보아 제목과 본문을 「녹패」로 옮겼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