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31

조의대부 국자좨주 한림시강학사를 사양하는 표讓朝議大夫國子祭酒翰林侍講學士表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25자 · 낭독 2.6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望峻賢關。尤重師儒之任。職親內署。莫高學士之榮。惟其人而敢當。非若臣之得處。聞命隕越。撫躬震惶。性本憃愚。識非該博。學雖篤志。未免爲章句穿鑿之儒。才不適時。安敢備朝廷器使之用。端逢盛際。驟躡淸資。四年待制於書筵。十載代言於誥院。凡閱文章之高選。大過夙心。訖微翰墨之片能。仰裨神化。敢圖異眷。又採虛名。特除壁水訓導之司。申以銀臺講讀之地。雖欲冒受。得無愧容。況躐衆超躋。懼涉積薪之議。故叫閽自訴。期還出綍之言。伏望聖上陛下俯諒愚誠。追收渙號。自邇臣而精簡。至寒士而旁搜。則國不乏人。有副上心之虛佇。臣能安分。免遭物論之喧騰。云云。

운운. 어진 이를 기르는 문의 명망이 높으니 스승 되는 선비의 소임이 더욱 무겁고, 직책이 대궐 안 관서에 가까우니 학사의 영화보다 높은 것이 없습니다. 오직 마땅한 사람이어야 감당하는 것이니 신 같은 자가 있을 자리가 아닙니다. 명을 듣고 넘어질 듯하고 몸을 어루만지며 떨고 두려워합니다.

성품은 본디 어리석고 아는 것은 두루 넓지 못합니다. 학문에 비록 뜻을 도탑게 하였으나 글귀를 억지로 파는 선비 되기를 면하지 못하였고, 재주는 때에 맞지 않으니 어찌 감히 조정에서 그릇에 맞게 부리시는 쓰임에 갖추어지겠습니까.

마침 성한 때를 만나 갑자기 맑은 자리를 밟았습니다. 네 해를 서연(書筵)에서 대제로 있고 열 해를 조서 짓는 관서에서 임금의 말을 대신하였습니다. 무릇 글로 뽑히는 높은 자리를 거친 것이 본디 품은 마음에 크게 지나치는데, 붓과 먹의 조각만한 재능으로도 우러러 신묘한 교화를 도운 것이 없습니다.

감히 남다른 돌보심으로 또 헛된 이름을 가려 뽑으시어, 특별히 벽수(壁水)에서 가르쳐 이끄는 관서를 내리시고 거듭 은대(銀臺)에서 강하고 읽는 자리를 주실 줄 헤아렸겠습니까. 비록 무릅쓰고 받고자 하나 부끄러운 낯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뭇사람을 건너뛰어 올랐으니 뒤에 온 자가 위에 놓인다는 의논에 걸릴까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문을 두드려 스스로 하소연하여 내리신 말씀을 거두시기를 기약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어리석은 정성을 굽어 헤아리시어 큰 명을 거두시고, 가까운 신하에서부터 정밀히 가리시고 가난한 선비에까지 널리 찾으십시오. 그러면 나라에 사람이 모자라지 않아 위에서 비워 두고 기다리시는 마음에 맞을 것이요, 신은 분수에 편안하여 뭇 의논이 떠들썩하게 오르는 것을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운운.

협주 1

中謝。

여기에 중사(中謝), 곧 사례하는 말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