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공거를 사양하는 표讓同知貢擧表
云云。世稱鉅儒。至掄材則未免視眩。臣以短識。其臨試也決若醉昏。勅雖有嚴。理豈冒受。伏念臣蔽蒙之性。涉獵之儒。講業未精。若廢耕而求穫。著詞多誤。恒操末以續顚。少本寡於聰明。老益加於遲鈍。粗將膚受之末學。妄播翰音之虛名。至忝聖知。夙參朝綴。祭酒儒林之美職也。已曾閱過。學士內翰之昵官也。尙爾冒居。出入諫垣者。或幾九年。優游誥院者。亦僅一紀。豈意仁明之眷。俾提選擧之權。昔嘗典試於成均。世多譏者。今復主盟於宗伯。孰曰宜哉。苟貪自榮。勉就斯任。雖欲不迷於揀採。固難遽革於昏愚。士林之騰謗也。猶可任聞。聖朝之失賢也。實非細事。過如忽至。悔可能追。伏望云云。忘返汗之嫌。寢出綸之命。更擇精強之鑑。伻當奔踶之求。則必不漏於魁才。仰足裨於文德。臣亦安分。心專守官。云云。
운운. 세상에서 큰 선비라 일컫는 이도 재목을 고르는 데 이르면 눈이 아찔함을 면하지 못합니다. 신은 짧은 식견으로 시험에 임하면 판단이 취해 어두운 듯할 것입니다. 명이 비록 엄하시나 이치로 어찌 무릅쓰고 받겠습니까.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은 막히고 어두운 성품이요 대충 섭렵한 선비입니다. 학업을 강함이 정밀하지 못하여 밭갈이를 버려두고 거두기를 구하는 것과 같고, 글 짓기에 잘못이 많아 늘 끝을 잡아 머리에 이어 붙입니다. 젊어서 본디 총명이 적었는데 늙어 더디고 둔함이 더욱 더해졌습니다. 겉만 얻은 얕은 학문을 거칠게 가지고 함부로 글 잘한다는 헛된 이름을 퍼뜨렸습니다.
성상께서 알아주심을 더럽히는 데까지 이르러 일찍 조정의 반열에 참여하였습니다. 좨주는 선비 무리의 아름다운 직책인데 이미 거쳤고, 학사는 대궐 안 한림의 가까운 벼슬인데 아직도 무릅쓰고 있습니다. 간관의 자리를 드나든 것이 아마 아홉 해에 가깝고, 조서 짓는 관서에서 넉넉히 노닌 것도 겨우 열두 해입니다.
어찌 어질고 밝으신 돌보심으로 선비를 뽑는 권한을 들게 하실 줄 생각하였겠습니까. 옛날 성균관에서 시험을 맡았을 때 세상에 꾸짖는 이가 많았는데, 이제 다시 종백(宗伯)의 자리에서 맹주가 되니 누가 마땅하다 하겠습니까.
구차히 스스로의 영화를 탐하여 힘써 이 소임에 나아간다면, 비록 가려 뽑는 데 헤매지 않고자 하나 진실로 어둡고 어리석음을 문득 고치기는 어렵습니다. 선비 무리가 헐뜯음을 올리는 것은 오히려 들어 맡길 수 있으나, 거룩한 조정이 어진 이를 잃는 것은 참으로 작은 일이 아닙니다. 허물이 문득 이르면 뉘우침을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운운. 흘린 땀은 돌이키지 못한다는 꺼림을 잊으시고 내리신 명을 거두시어, 다시 정밀하고 굳센 살피심을 가리시고 달리고 차는 좋은 말을 구하는 일을 맡기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으뜸 재주를 빠뜨리지 않아 우러러 글의 덕을 도울 수 있을 것이요, 신 또한 분수에 편안하여 마음을 오로지 벼슬 지키는 데 두겠습니다. 운운.
협주 1
中謝。
여기에 중사(中謝), 곧 사례하는 말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