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31

동지공거를 맡게 됨을 사례하는 표同前謝表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322자 · 낭독 3.5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棘院試能。本屬衡懸之鑑。楓宸降命。誤加墻面之軀。靜省顓蒙。伏深兢愧。竊以知人不易。自古非今。娟媸長短則見之可知。枉直賢愚則意所難度。豈以才藏於貌。智隱於心者歟。故張詞律之科。欲試胸襟之蘊。然文是而質非者有矣。或才虧而行備者在焉。不惟臨紙之時終日反覆而自惑。抑亦放榜之後畏人毀譽之何如。如臣者。附贅朝聯。索塗文苑。學無根據而浮虛不實。命與時來而騰躍敢前。每越資階。歷更淸要。制誥學士之重任。無不荷肩。場屋座主之劇權。亦粗梁指。然其時不能無失士之譏。臣之無所措顔者。至今宛如昨日矣。豈圖明聖悉滌瑕疵。復加掌選之權。更重遺賢之誚。讓不獲可。退莫寧心。此蓋云云。政尙右文。仁能護短。至使衰遲之物。得叨僭越之榮。臣敢不力所可當。心不暫弛。入山而擇衆木。非大匠雖難判分。過市而見奇珍。在常人猶知愛悅。苟有可觀之作者。亦何終昧而棄焉。得一英材。少益明代。云云。

운운. 가시울 둘러친 과거장에서 재능을 시험하는 일은 본디 저울에 달듯 살피는 눈에 딸린 것인데, 대궐에서 명이 내려 담을 마주하고 선 듯한 몸에 잘못 더해졌습니다. 고요히 어리석고 어두움을 살피니 엎드려 떨림과 부끄러움이 깊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사람을 알아보는 일이 쉽지 않음은 예부터 그러하여 지금만이 아닙니다. 곱고 미움과 길고 짧음은 보면 알 수 있으나, 굽고 곧음과 어짊과 어리석음은 뜻으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어찌 재주가 모습에 감추이고 슬기가 마음에 숨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글과 격률의 과목을 벌여 가슴에 쌓은 것을 시험하려 합니다.

그러나 글은 옳은데 바탕이 그른 자가 있고, 혹 재주는 이지러졌으나 행실이 갖추어진 자도 있습니다. 종이를 마주한 때에 온종일 되풀이하여도 스스로 헤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방을 붙인 뒤에 남들의 헐뜯음과 기림이 어떠할까 두렵습니다.

신 같은 자는 조정 반열에 혹처럼 붙고 글의 동산에서 길을 더듬습니다. 학문은 뿌리와 근거가 없어 떠서 비고 알차지 않은데, 운명이 때와 함께 와서 뛰어올라 감히 앞섰습니다. 늘 품계를 건너뛰어 맑고 긴요한 자리를 두루 거쳤습니다. 조서 짓는 학사의 무거운 소임을 어깨에 지지 않은 것이 없고, 과거장 좌주(座主)의 큰 권병도 또한 거칠게 손가락에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선비를 잃었다는 꾸지람이 없을 수 없었으니, 신이 낯을 둘 곳이 없던 것이 이제까지 완연히 어제와 같습니다. 어찌 밝으신 성상께서 흠과 허물을 다 씻으시고 다시 선비 뽑는 권한을 더하시어, 어진 이를 빠뜨렸다는 꾸지람을 거듭 무겁게 하실 줄 헤아렸겠습니까. 사양이 허락을 얻지 못하여 물러나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이는 대개 운운. 정사에 글을 높이시고 어짊으로 모자람을 덮어 주시어, 쇠하고 더딘 물건까지도 분에 넘치는 영화를 함부로 받게 하신 것입니다.

신이 감히 감당할 만한 일에 힘쓰고 마음을 잠깐도 늦추지 않겠습니까. 산에 들어가 뭇 나무를 가리는 일은 큰 목수가 아니면 가려 나누기 어려우나, 저자를 지나며 기이한 보배를 보면 예사로운 사람도 오히려 아끼고 기뻐할 줄 압니다. 진실로 볼 만한 글을 지은 자가 있다면 또한 어찌 끝내 어두워 버리겠습니까. 한 사람의 뛰어난 재목을 얻어 밝은 시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운운.

협주 1

中謝。

여기에 중사(中謝), 곧 사례하는 말이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