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33

임영령(任永齡)이 동지공거를 사양하나 허락하지 않는 비답任永齡讓同知貢擧不允批答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177자 · 낭독 1.6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3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夫領宗伯之任。搜擧子之賢。惟其有衡石之平。水鏡之鑑。然後娟媸不能眩。輕重不相欺。未有己之不足而能品人之優劣者也。卿早中科名。累更華要。其下筆成章。則如江海之深而涯涘不可測也。其通今博古。則若日月之明而罅隙無不照焉。故選之儒臣。委以文柄。朕豈知之未詳而命之耶。以已試之效觀之。嘗掌司馬試也。所得皆當世聞人。朕未嘗不嘉嘆焉。且主張試席。其揆一也。豈工於彼而拙於此。智於前而愚於後耶。毋拘小節。更欲牢辭。云云。

운운.

무릇 예관의 소임을 거느려 과거 보는 이 가운데 어진 이를 찾아내는 일은, 저울대 같은 공평함과 물거울 같은 밝음이 있은 뒤에라야 곱고 추함이 눈을 흐리지 못하고 가볍고 무거움이 서로 속이지 못한다. 제 스스로 넉넉하지 못하면서 남의 낫고 못함을 매길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경은 일찍 과거에 올라 여러 번 화려하고 요긴한 자리를 거쳤다. 붓을 대면 글이 이루어짐은 강과 바다처럼 깊어 그 가를 헤아릴 수 없고, 이제를 통하고 옛을 널리 앎은 해와 달처럼 밝아 틈마다 비추지 않는 데가 없다. 그러므로 선비 신하 가운데 뽑아 글을 매기는 권한을 맡겼으니, 짐이 어찌 자세히 알지 못하고 명하였겠는가.

이미 겪어 본 보람으로 보건대, 일찍이 사마시를 맡았을 때 얻은 이가 다 그때에 이름난 사람이어서 짐이 아름답게 여겨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다. 또 시험 자리를 주관함은 그 법도가 한가지다. 어찌 저기에는 익숙하고 여기에는 서투르며, 앞에는 슬기롭고 뒤에는 어리석겠는가.

작은 절조에 매여 다시 굳이 사양하려 하지 말라.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