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33

최보순(崔甫淳)이 금자광록대부 참지정사 집현전대학사 동수국사 판예부사를 사양하나 허락하지 않는 교서崔甫淳讓金紫光祿大夫參知政事集賢殿大學士同修國史判禮部事不允敎書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37자 · 낭독 2.4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3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夫代天理物。貳王行政者。宰相之任也。國以之重輕。民由之肥瘠。以人爲鑑。唐宗保魏徵之明。用汝作舟。商后倚傅說之濟。如非遠量。曷副輿情。卿該通天人。諳練典故。業文而資之虎。體柔而濟以剛。精神折衝。弄敵人於掌上。論議有據。藏國子於胸中。貞松不爲寒暑變其容。良玉不因燥濕渝其性。擧國安危而是託。非卿德望而孰當。是用直越鴻樞。擢登鳳閣。申峻史臣之職。兼崇書殿之資。用玆西省之新榮。雪爾南曹之舊屈。大抵王者之用人也。雖未嘗究閱其爲人。苟僉言之皆允。猶柄用而不疑。況如卿者。在昔納言密邇之時。朕已親試。置斯當軸論思之地。誰復異詞。毋執小謙。更陳牢讓。所請宜不允。云云。

운운.

무릇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고 임금의 버금이 되어 정사를 행함은 재상의 소임이다. 나라가 이로써 무거워지고 가벼워지며 백성이 이로 말미암아 살찌고 여윈다. 사람을 거울로 삼아 당나라 태종은 위징(魏徵)의 밝음을 지녔고, 너를 써서 배를 삼겠다 하여 상나라 임금은 부열(傅說)의 건넴에 의지하였다. 먼 도량이 아니면 어찌 뭇사람의 마음에 맞겠는가.

경은 하늘과 사람의 일을 두루 통하고 옛 법과 고사에 익숙하다. 글을 업으로 삼으면서 굳센 재능을 바탕으로 지녔고, 몸가짐은 부드러우나 굳셈으로 건넌다. 정신으로 적을 꺾어 적을 손바닥 위에서 놀리고, 의논에 근거가 있어 나라의 배움을 가슴속에 간직하였다. 곧은 소나무가 추위와 더위로 그 모습을 바꾸지 않고 좋은 옥이 마르고 젖음으로 그 성질을 달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온 나라의 안위를 여기에 맡기니 경의 덕망이 아니면 누가 감당하겠는가. 이에 곧바로 추밀원을 뛰어넘어 중서성에 뽑아 올리고, 사관의 직임을 거듭 높이며 집현전의 품계를 아울러 높인다. 이 서성의 새 영예로 네가 남조에서 겪은 묵은 굽힘을 씻게 한다.

대저 임금이 사람을 씀에는 비록 그 사람됨을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였더라도 뭇사람의 말이 다 맞으면 오히려 권한을 맡겨 쓰고 의심하지 않는다. 하물며 경 같은 이는 예전 납언으로 가까이 모시던 때에 짐이 이미 몸소 겪어 보았다. 이 요직에 두어 의논하고 생각하게 하는데 누가 다시 다른 말을 하겠는가.

작은 겸손을 붙잡고 다시 굳이 사양하는 글을 올리지 말라. 청한 바는 마땅히 허락하지 않는다.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