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33

유언침(柳彥琛)이 정의대부 감문위 섭상장군을 사양하나 허락하지 않는 비답柳彥琛讓正議大夫監門衛攝上將軍不允批答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14자 · 낭독 1.9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3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朕觀魏黃初中。獨以曹眞爲上將軍。唐高祖亦置天策府上將軍。其後遂省。唯我國所以恒置上將軍者。其意若曰。若將軍有功。則可以大將處之。大將有功。則將何以復加。故設斯爵。以答大將之元功茂烈耳。豈宜人授其職耶。卿生長名家。熏習善訓。撿身持法。勿隳乃父之風。寫字綴詞。不讓文臣之手。然不喜腐儒之挾策。乃獨希飛將之立功。早戴鶡冠。久陪龍仗。當東都之犯順也。麾百騎而出平梟獍。及北虜之肆淫也。尹千人而往掃犬羊。載惟積累之功。何吝甄崇之典。玆加峻級。用示異恩。秩視八座之資。班在九卿之右。是猶慊爾。何以讓爲。云云。

운운.

짐이 보건대 위나라 황초 연간에는 오직 조진(曹眞)만을 상장군으로 삼았고, 당나라 고조도 천책부 상장군을 두었으나 그 뒤에 마침내 없앴다. 오직 우리나라가 늘 상장군을 두는 까닭은 그 뜻이 이러하다. 장군에게 공이 있으면 대장으로 대우할 수 있으나 대장에게 공이 있으면 장차 무엇을 더하겠는가. 그러므로 이 벼슬을 두어 대장의 으뜸가는 공과 무성한 업적에 갚을 뿐이니, 어찌 사람마다 그 직을 줄 것이겠는가.

경은 이름난 집안에서 나고 자라 좋은 가르침에 젖었다. 몸을 단속하고 법을 지켜 네 아비의 풍모를 무너뜨리지 않았고, 글씨를 쓰고 글을 엮음이 문신의 솜씨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썩은 선비가 책 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홀로 날래던 장수처럼 공 세우기를 바랐다. 일찍이 무관의 갓을 쓰고 오래 임금의 의장을 모셨다.

동도가 반역하였을 때에는 백 기를 지휘하여 나가 사나운 무리를 평정하였고, 북쪽 오랑캐가 멋대로 날뛰었을 때에는 천 사람을 거느리고 가서 개와 양 같은 무리를 쓸었다. 쌓이고 쌓인 공을 생각하니 어찌 가려 높이는 법을 아끼겠는가.

이에 높은 품계를 더하여 남다른 은혜를 보인다. 품계는 팔좌의 자품에 견주고 반열은 구경의 위에 있다. 이도 오히려 모자란데 어찌 사양하는가.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