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부사 최숙필(崔叔必)이 상중에 벼슬에 다시 나오라는 명을 사양하나 허락하지 않는 비답慈州副使崔叔必讓起復不允批答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3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三年之喪。天下之通制也。然中古所以從權卽吉者。本爲金革之事。而朕已付爾以北方分憂之寄。夫北方者。接於強虜之邦。當時尙爲用兵之地。今則胡騎橫行。倏來忽往。故邊城守令。無有投戈解甲。而方晝夜戒嚴之時也。汝於斯時。將以親喪爲解。而其不務忘家徇國之計耶。云云。
운운.
삼년상은 천하에 두루 통하는 제도다. 그러나 중고에 권도를 따라 길복을 입게 한 것은 본디 전쟁의 일 때문이었다. 짐이 이미 너에게 북쪽 땅의 근심을 나누어 맡기는 소임을 주었다.
무릇 북쪽 땅은 강한 오랑캐의 나라에 닿아 있어 평시에도 군사를 쓰는 자리다. 이제는 오랑캐 기병이 멋대로 다니며 갑자기 왔다 홀연히 간다. 그러므로 변방 성의 수령은 창을 던지고 갑옷을 벗는 이가 없어 바야흐로 밤낮으로 경계를 엄히 할 때다.
너는 이때에 어버이 상을 핑계로 삼아 집을 잊고 나라를 따르는 계책에 힘쓰지 않으려 하는가.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