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33

신선주(申宣胄)가 천우위 섭대장군을 사양하나 허락하지 않는 비답申宣胄讓千牛衛攝大將軍不允批答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183자 · 낭독 1.6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3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朕觀大將軍之職。自漢晉已下皆置之。至李唐始設十六衛之號。以冠其職。其所謂千牛者。掌執王刀宿衛侍從。多以高蔭子弟年少美容儀者補之。故時人目爲貴門之高選。居是寵者。不曰榮歟。爾生二代之相門。擁一時之人望。志略雄邁。有國士之風。姿貌魁梧。負丈夫之氣。夫有大將之器者。不可以偏將處之。況今虜氣熾盛。內外戒嚴。宜得勇敢之士。爲之爪牙。以備非常。故朕選諸在列之臣。崇以登壇之禮。是則物議所同。而非朕之私恩也。毋多謙讓。驟服恩榮。云云。

운운.

짐이 보건대 대장군의 직은 한나라와 진(晉)나라 이래로 다 두었고, 당나라에 이르러 비로소 십육위의 이름을 두어 그 직 앞에 얹었다. 이른바 천우라는 것은 임금의 칼을 잡고 숙위하며 모시는 일을 맡는데, 높은 음덕을 입은 자제 가운데 나이 젊고 모습이 아름다운 이를 많이 뽑아 채웠다.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이 귀한 집안의 높은 뽑힘으로 보았으니, 이 은총을 누리는 이를 영화롭다 하지 않겠는가.

너는 두 대에 걸친 재상 집안에 태어나 한 시대의 인망을 안았다. 뜻과 방략이 웅장하고 뛰어나 나라 선비의 풍모가 있고, 모습이 크고 우람하여 장부의 기개를 지녔다. 무릇 대장의 그릇이 있는 이를 치우친 장수로 대우할 수 없다.

하물며 이제 오랑캐의 기세가 드세어 안팎으로 경계가 엄하니, 마땅히 용감한 선비를 얻어 발톱과 어금니로 삼아 뜻밖의 일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므로 짐이 반열에 있는 신하 가운데 뽑아 단에 올리는 예로 높였다. 이는 뭇 의논이 같이한 바요 짐의 사사로운 은혜가 아니다.

겸손히 사양함을 거듭하지 말고 어서 은총의 영예를 받으라.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