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33

추밀부사 박현규(朴玄珪)가 세 번째로 물러나기를 비니 허락하는 교서樞密副使朴玄珪乞退三度依允敎書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15자 · 낭독 2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3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古者大臣有乞骸之請。則不可拘以春秋而輕許可之。其若身衰病篤。告之以不任趨事。則亦不可強其所不堪而傷其性也。卿早中巍科。歷更要職。身無擇行。飾禮義爲羽儀。事不辭難。蹈艱梗如氈毯。處諫垣而彈糾百辟。則權豪莫不落膽。參密地而毗翼萬機。則人民庶幾息肩。是眞古大臣。而朕所不忍去左右也。然以厚於利物而薄於攝身。急於醫國而緩於養性。肆嬰多病。屢乞退安。言固出於成衷。理已難於牽迫。降玆兪制。副爾高懷。夫養老乞言。政之本也。朕不以卿爲已解機務。而如有疑議。輒咨決焉。卿亦毋謂不居朕前。一日不爲國計也。云云。

운운.

옛날에 대신이 몸을 놓아 달라 청하면 나이에 매여 가볍게 허락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몸이 쇠하고 병이 깊어 일에 나아갈 수 없다고 고하면, 또한 감당하지 못할 것을 억지로 시켜 그 목숨을 상하게 할 수 없다.

경은 일찍이 높은 과거에 올라 요긴한 벼슬을 두루 거쳤다. 몸에 흠잡을 행실이 없어 예의를 꾸며 본보기가 되었고, 일에 어려움을 사양하지 않아 험한 곳 밟기를 담요 밟듯 하였다. 간관의 자리에 있어 뭇 벼슬아치를 탄핵하니 권세 있는 이들이 간담을 떨어뜨리지 않는 이가 없었고, 비밀한 자리에 참여하여 온갖 정사를 도우니 백성이 거의 어깨를 쉬게 되었다. 이는 참으로 옛 대신이라 짐이 차마 좌우에서 떠나보내지 못하는 바다.

그러나 남을 이롭게 하는 데 두텁고 제 몸을 돌보는 데 엷으며, 나라를 고치는 데 급하고 제 몸을 기르는 데 더디었다. 이에 병이 많이 얽혀 여러 번 물러나 편안하기를 빌었다. 말이 진실로 참된 마음에서 나왔으니 이치로 보아 억지로 붙잡기 어렵다. 이에 허락하는 명을 내려 네 높은 뜻에 맞춘다.

무릇 늙은이를 봉양하고 그 말을 구함은 정사의 근본이다. 짐은 경이 이미 기무를 놓았다 하여 멀리하지 않고 의심스러운 의논이 있으면 곧 물어 결단하겠다. 경도 또한 짐의 앞에 있지 않다 하여 하루라도 나라를 위한 계책을 아니 한다고 여기지 말라.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