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춘후 원(沅)을 계성후로 고쳐 봉하는 교서改封壽春侯沅爲桂城侯敎書官誥 敎書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夫骨肉親愛情之所鐘。故自古據人君之勢。封立子弟。則至於乳齒髫年。猶使之腰垂斗印。例奉朝請者。理之然也。況耆年舊德。鬱爲宗室之賢。華組光圭。曾躡侯蕃之秩。盍更封於美邑。示特異之優恩。云云。
운운.
무릇 살붙이를 가까이 사랑함은 정이 모이는 바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아들과 아우를 봉하여 세울 때에는, 젖니를 갈 어린 나이에도 오히려 허리에 말[斗]만 한 인끈을 드리우고 으레 조회에 나오게 하였으니 이치가 그러한 것이다. 하물며 나이 많고 덕이 오래되어 왕실의 어진 이로 우뚝하며, 빛나는 인끈과 옥홀로 일찍이 제후의 품계를 밟은 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어찌 좋은 고을에 다시 봉하여 남달리 넉넉한 은혜를 보이지 않겠는가.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