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34

수춘후 원(沅)을 계성후로 고쳐 봉하는 관고改封壽春侯沅爲桂城侯敎書官誥 官誥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64자 · 낭독 2.7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懿親重德。當以名藩處之。徙食改封。載諸前史多矣。宜循舊典。用奬宗英。具官某。量宇泓深。神姿溫裕。弘雅樂善。蹈東平之蹤。嚴矜有威。得沛憲之體。身雖生於紈綺。手不捨於縑緗。制作參造化之機。學識洞天人之際。象船構思。難窺智略之淵源。駝鈿定封。夙峙邦家之屛翰。頃者忽値風波之駭。暫侵嵐瘴之熏。金經鍊而愈佳。祗益貴耳。月遇虧而旋滿。庸何傷乎。召復已還。眷懷彌渥。更峙苴茅之典。期爲固蔕之圖。大尉二公之魁。漢省司馬然後置。柱國四等之極。楚與令尹而同。尊如匪其人。曷堪是任。可特授守太尉上柱國桂城侯。嗚戲。卿本是恂恂長者。朕不必惇惇訓之。然勞謙有終。是君子之德也。斯須不可離。制節謹度。迺諸侯之孝也。朝夕愼所履。飭躬不怠。流裕無窮。云云。

운운.

아름다운 친척으로 덕이 무거운 이는 마땅히 이름난 봉토에 두어야 한다. 먹을 고을을 옮겨 봉호를 고친 일은 앞선 역사에 실린 것이 많으니, 옛 법을 좇아 왕실의 빼어난 이를 기림이 마땅하다.

벼슬 갖춘 아무는 도량이 깊고 넓으며 타고난 모습이 따뜻하고 넉넉하다. 크고 바르며 착함을 즐거워하여 동평왕(東平王)의 자취를 밟았고, 엄하고 조심스러워 위엄이 있어 패헌왕(沛獻王)의 몸가짐을 얻었다. 몸은 비록 비단옷 속에서 났으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지어 만드는 솜씨는 조화의 기틀에 참여하고, 배워 아는 바는 하늘과 사람 사이를 꿰뚫었다. 코끼리를 배로 달아 보듯 생각을 얽으니 슬기와 꾀의 깊은 근원을 엿보기 어렵고, 낙타 무늬 인장으로 봉작을 정하니 일찍부터 나라의 울타리로 우뚝하였다.

지난번 갑자기 놀라운 풍파를 만나 잠시 산 기운과 더운 땅의 독한 김에 시달렸다. 그러나 금은 단련을 거칠수록 더욱 좋아지니 다만 귀함을 더할 뿐이요, 달은 이지러졌다가 곧 차니 무엇이 상하겠는가. 불러들여 이미 돌아왔으니 돌보는 마음이 더욱 두텁다. 다시 띠풀에 흙을 싸서 주는 법을 세워 뿌리를 굳게 하는 꾀로 삼는다.

태위는 두 공의 으뜸이라 한나라에서는 대사마를 없앤 뒤에야 두었고, 상주국은 네 등급의 끝이라 초나라에서는 영윤과 같았다. 높기가 이러하니 그 사람이 아니면 어찌 이 소임을 감당하겠는가. 수태위 상주국 계성후로 특별히 내려도 좋다.

아, 경은 본디 미덥고 너그러운 어른이니 짐이 굳이 거듭 타이를 것이 없다. 그러나 수고로우면서도 겸손하여 끝을 잘 맺음은 군자의 덕이니 잠시도 떠날 수 없고, 씀씀이를 절제하고 법도를 삼감은 제후의 효도이니 아침저녁으로 밟는 바를 조심하라. 몸을 다잡아 게을리하지 않으면 넉넉함이 끝없이 흐르리라.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