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종 승통 도행에게 내리는 교서華嚴業僧統都行敎書官誥 敎書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夫國家所以設釋門之階品者。其意以爲若時乎有僧中龍鳳魁然挺出。其德也望也皆爲人之所莫抗對。而無稱謂以別之。則其與庸流有何等級耶。是以。其德之宜居席上。則謂之首座。德與望之合統沙門。則謂之僧統。此其極選也。雖本於尊道所稱。而未嘗關於名利也。然亦有高下差等。故其浸也稍如朝之班爵之例。則固不可不澄汰其人。然後授之也。師以法王。洪闡圓敎。爲衆所歸久矣。朕何惜其選。以孤福利邦家之效歟。今云云。
운운.
무릇 나라에서 불문의 품계를 둔 뜻은 이러하다. 만일 그때에 승려 가운데 용이나 봉황 같은 이가 우뚝 빼어나 그 덕과 명망을 아무도 맞설 수 없는데도 그를 가려 부를 일컬음이 없다면, 예사 무리와 무슨 등급이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그 덕이 마땅히 윗자리에 앉을 만하면 수좌라 하고, 덕과 명망이 승려들을 아울러 거느릴 만하면 승통이라 한다. 이것이 그 지극한 뽑음이다.
비록 도를 높이는 데에서 나온 일컬음이요 이름과 이익에 걸린 적이 없으나 또한 높고 낮은 차등이 있다. 그러므로 차츰 조정에서 벼슬을 나누는 예와 같아지니, 진실로 그 사람을 맑게 가려낸 뒤에 주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은 법왕으로서 원만한 가르침을 크게 펴 뭇사람이 돌아간 지 오래이다. 짐이 어찌 그 뽑음을 아껴 나라를 복되고 이롭게 한 보람을 저버리겠는가. 이제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