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를 은청광록대부 추밀사 호부상서로 삼아 벼슬에서 물러나게 하는 교서崔正華爲銀靑光祿大夫樞密使戶部尙書致仕敎書官誥各一道 敎書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大抵大夫以縱心之年。據經乞退。是雖禮之常也。其若才足以幹國體。智足以贊政經。以左右予一人者。則其在人主貪賢之意。固挽而留之。於理不爲不可。若卿者是已。然卿以齒邁不任從事爲辭。其志確然有不可奪者。如是而猶強焉。斯又理之不可也。且臣以禮進退。則君以禮待之義也。其所以優其禮者。唯是區區增秩進爵之一段事耳。朕可刓印耶。此之授也。豈其意歟。云云。
운운.
대체로 대부가 마음 가는 대로 할 나이에 이르러 경전에 근거하여 물러나기를 비는 것은 예의 떳떳함이다. 그러나 재주가 나라의 틀을 맡을 만하고 슬기가 정사의 날줄을 도울 만하여 나 한 사람의 좌우가 되는 이라면, 어진 이를 탐내는 임금의 마음으로는 진실로 붙잡아 머무르게 함이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 경 같은 이가 바로 그러하다.
그러나 경이 나이가 많아 일을 맡을 수 없다는 말로 사양하니 그 뜻이 굳어 빼앗을 수가 없다. 이러한데도 오히려 억지로 붙든다면 이 또한 이치에 안 될 일이다. 또 신하가 예로써 나아가고 물러나면 임금은 예로써 대접함이 옳다. 그 예를 넉넉히 하는 길이란 오직 품계를 올리고 벼슬을 높이는 자잘한 한 가지 일뿐이다. 짐이 인장을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며 아까워할 수야 있겠는가. 이렇게 내리는 것이 어찌 내 본뜻이겠는가.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