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34

회안공을 수태사 상서령으로 삼으며 따로 마제를 내리는 교서淮安公爲守大師尙書令。余如故別宣麻敎書官誥。 敎書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142자 · 낭독 1.4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4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夫尙書令。百官之長也。地峻位極。故無其人則闕焉。時或以懿親置之。然非有重望元功。亦不可妄授。故雖宗室之中。得閱斯任者。無有幾人矣。卿方國家艱棘之時。赴戎狄縱橫之地。鎭之以威重。和之以語言。果令醜種頑戎。北首班師。則可謂奇偉蓋世之功也。噫。當此時微卿。幾無今日矣。且功豐則賞宜醲。器大者位必緊。肆擢置論思之地。欲益資經濟之庸。云云。

운운.

무릇 상서령은 온 벼슬아치의 우두머리다. 자리가 높고 지위가 지극하므로 마땅한 사람이 없으면 비워 둔다. 때로 가까운 종친을 그 자리에 두기도 하나, 두터운 명망과 으뜸가는 공이 있지 않으면 또한 함부로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종실 가운데서도 이 소임을 거친 이가 몇 사람 되지 않는다.

경은 나라가 어렵고 가시밭 같던 때를 당하여 오랑캐가 이리저리 내닫는 땅으로 나아갔다. 위엄과 무게로 누르고 말로 화친하여, 마침내 사나운 무리와 미련한 오랑캐로 하여금 북쪽으로 머리를 돌려 군사를 거두게 하였으니, 세상을 덮을 만한 뛰어난 공이라 이를 만하다. 아, 이때에 경이 없었더라면 오늘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또 공이 두터우면 상도 두터워야 하고, 그릇이 큰 이는 자리도 반드시 무거워야 한다. 이에 뽑아 올려 의논하고 생각하는 자리에 두어, 세상을 다스리는 쓰임에 더욱 바탕이 되게 하려 한다.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