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청광록대부 추밀원사 어사대부 이공의 묘지명銀靑光祿大夫樞密院使御史大夫李公墓誌銘
予嘗論之。勇不必以力。而先以氣爲本。以義爲主者也。何則。生重於義則其氣怯。氣怯則雖鶡冠猛士。有臨陣而股弁者。義重於生則其氣激。氣激則雖緩帶君子。有雄入九軍。略無懼容者。是理之常也。夫所謂義者。有可以濟國難活萬人。則以身當之。奮不顧生者是已。誰其得之。維樞密相國李公一人而已。越貞祐五年丙子。契丹犯境。上命三軍討之。以公爲右軍兵馬判官。及與虜戰於貫花驛之南壤。虜乘勝進擊。我軍皆奔北。無一人反顧者。公獨瞋目直前。手殺數虜。然後遂叱衆俱進。賊衆遂却。是日微公。官軍幾殆矣。明年。轉左軍兵馬副使。復與虜戰於廣灘。公先登大捷。俘獲甚衆。上奇其勇。除左右衛將軍。公固辭不受。尋改將作監。出爲慶尙道按察使。會朝廷勑諸道按廉使。各率管內軍士赴三軍爲羽翼。三軍亦欲待以爲援。屢督促之時。虜兵遮屯要會。元帥密傳以勿由其路。公曰。所以赴戰。固敵是求。避敵非勇也。行由徑路似怯也。遂直衝虜屯而行。虜果出圍之。公與戰大勝。斬䤋不可數。獻俘于元帥府。元帥大加咨賞。未幾。又命公以所部軍士。押轉軍資於順州。虜自殷州。出於不意。公唯與麾下百餘人。與戰却之。元帥自城上望之。嗟嘆至垂涕。己卯三月。以尙書左承被召。是年賊稍平。餘種入江東城自保。朝廷鍊銳兵。以公爲都統。公固辭領兵。以單騎赴之。以其界兵士。悉討平其賊。仍留爲東北面兵馬使。明年。以樞密院右承宣召之。蓋公嘗固辭將軍。故以喉舌貴官寵之也。公諱績。其先砥平縣人也。曾祖諱某。祖諱某。考諱某。監門衛大將軍追贈尙書左僕射。公始屬茶房。出爲猛州倅。及代。凡八年未調。明昌某年。復屬茶房。旋移籍內侍。累歷官至閣門祗候。出爲高州守。入爲尙舍奉御。閱都官兵部二員外。又遷至軍器將作監吏部侍郞尙書右丞樞密院左承宣司宰卿判大僕事左散騎常侍。貞祐十年壬午。擢樞密副使。甲申。遷院使御史大夫。明年卒。享壽六十四。公先娶某官某氏女。無嗣。後娶某官女。又無嗣。公爲人端平簡直。平和恭謹。人未嘗見慍色。雖至貴官。常獨處一室。淡然若書生措大。略不以家事掛意。平時姁婾柔弱。似無膽勇者。及臨戰陣。其勇敢之過人拔群如此。則豈可以常調論之耶。求之古人。不可多得者歟。凡歷官內外。其淸廉礪節與夫興利除害者。不可勝紀。然以公之忠義勇烈功業之卓然者言之。此則公之細也。故於此不具焉。養息某官某。來乞銘勤勤。敢受而銘之云。
내가 일찍이 논한 적이 있다. 용기는 반드시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기운을 바탕으로 삼고 의로움을 주인으로 삼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삶이 의로움보다 무거우면 그 기운이 겁을 낸다. 기운이 겁을 내면 비록 갈관(鶡冠)을 쓴 사나운 군사라도 진에 다다라 다리를 떠는 이가 있다. 의로움이 삶보다 무거우면 그 기운이 북받친다. 기운이 북받치면 비록 띠를 느슨히 맨 선비라도 씩씩하게 아홉 겹 군진에 들어가 조금도 두려운 낯이 없는 이가 있다. 이것이 이치의 떳떳함이다. 무릇 이른바 의로움이란, 나라의 어려움을 건지고 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제 몸으로 맞서 떨쳐 일어나 삶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누가 그것을 얻었는가. 오직 추밀 상국 이공 한 사람뿐이다.
정우 오년 병자(丙子)에 거란이 국경을 침범하였다. 임금이 삼군에 명하여 치게 하고 공을 우군 병마판관으로 삼았다. 관화역(貫花驛) 남쪽 들에서 오랑캐와 싸울 때 오랑캐가 이긴 김에 밀고 들어오니 우리 군사가 다 달아나 한 사람도 돌아보는 이가 없었다. 공이 홀로 눈을 부릅뜨고 곧장 나아가 손수 오랑캐 몇을 죽인 뒤에 마침내 무리를 꾸짖어 함께 나아가니 도적의 무리가 마침내 물러났다. 이날 공이 없었더라면 관군이 거의 위태로웠을 것이다.
이듬해 좌군 병마부사로 옮겼다. 다시 광탄(廣灘)에서 오랑캐와 싸울 때 공이 먼저 올라 크게 이기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다. 임금이 그 용기를 기이히 여겨 좌우위 장군에 임명하였으나 공이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어 장작감으로 고쳤고 나가 경상도 안찰사가 되었다.
마침 조정이 여러 도의 안렴사에게 명하여 저마다 관내의 군사를 거느리고 삼군에 나아가 날개가 되게 하였다. 삼군도 기다려 도움으로 삼고자 하여 여러 번 재촉하였다. 그때 오랑캐 군사가 요충에 진을 치고 막았으므로 원수가 몰래 전하여 그 길로 가지 말라 하였다. 공이 말하였다. 「싸움에 나아가는 까닭은 본디 적을 찾는 것이다. 적을 피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요, 지름길로 가는 것은 겁내는 듯하다.」 마침내 오랑캐의 진을 곧바로 찌르며 갔다. 오랑캐가 과연 나와 에워쌌으나 공이 싸워 크게 이겨 벤 머리를 셀 수 없었다. 사로잡은 이를 원수부에 바치니 원수가 크게 감탄하여 기렸다.
얼마 뒤 또 공에게 명하여 거느린 군사로 군수품을 순주(順州)로 실어 옮기게 하였다. 오랑캐가 은주(殷州)에서 뜻밖에 나왔는데 공이 다만 거느린 백여 사람과 함께 싸워 물리쳤다. 원수가 성 위에서 바라보며 탄식하다가 눈물을 흘리기에 이르렀다.
기묘(己卯)년 삼월에 상서좌승으로 불려 들어왔다. 이해에 도적이 조금 평정되고 남은 무리가 강동성(江東城)에 들어가 스스로 지켰다. 조정이 날랜 군사를 가려 뽑고 공을 도통으로 삼았다. 공이 군사 거느리기를 굳이 사양하고 홀몸으로 말을 달려 갔다. 그 지경의 군사로 그 도적을 다 쳐 평정하고 그대로 머물러 동북면 병마사가 되었다. 이듬해 추밀원 우승선으로 불렀다. 대개 공이 일찍이 장군을 굳이 사양하였으므로 왕명을 출납하는 귀한 벼슬로 총애한 것이다.
공의 이름은 적(績)이요 그 조상은 지평현(砥平縣) 사람이다. 증조 아무개, 할아버지 아무개, 아버지 아무개는 감문위 대장군으로 상서좌복야를 받았다.
공이 처음 다방(茶房)에 붙었다가 나가 맹주(猛州)의 원이 되었다. 갈릴 때에 이르러 무릇 여덟 해를 옮기지 못하였다. 명창 아무 해에 다시 다방에 붙었고 곧 내시로 이름을 옮겼다. 여러 벼슬을 거쳐 합문지후에 이르렀다. 나가 고주(高州) 수령이 되었고 들어와 상사봉어가 되었으며 도관과 병부의 두 원외랑을 지냈다. 또 옮겨 군기감·장작감·이부시랑·상서우승·추밀원 좌승선·사재경·판태복사·좌산기상시에 이르렀다. 정우 십년 임오(壬午)에 추밀부사로 뽑혔고 갑신(甲申)에 추밀원사 어사대부로 옮겼으며 이듬해 죽었다. 누린 나이가 예순넷이다. 공은 먼저 아무 벼슬 아무 씨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나 뒤이을 자식이 없었고, 뒤에 아무 벼슬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나 또 뒤이을 자식이 없었다.
공의 사람됨은 단정하고 평탄하며 간략하고 곧았다. 화평하고 공손하며 삼가서 사람들이 성난 낯빛을 본 적이 없었다. 비록 귀한 벼슬에 이르러서도 늘 한 방에 홀로 있어 담담하기가 글 읽는 가난한 선비 같았고 조금도 집안일을 마음에 걸어 두지 않았다. 평소에는 부드럽고 즐거우며 약하여 담과 용기가 없는 듯하였다. 그러나 싸움의 진에 다다라서는 그 용감함이 남을 넘고 무리에서 빼어남이 이와 같았으니 어찌 보통 사람의 잣대로 논하겠는가. 옛사람에게서 찾아도 많이 얻을 수 없는 이가 아닌가.
무릇 안팎의 벼슬을 지내며 맑고 깨끗하게 절개를 갈고닦은 것과 이로움을 일으키고 해로움을 없앤 것은 이루 다 적을 수 없다. 그러나 공의 충의와 매서운 용기와 우뚝한 공업으로 말하면 이런 것은 공에게 자잘한 일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갖추어 적지 않는다. 양자인 아무 벼슬 아무개가 와서 명을 부지런히 빌기에 감히 받아 명을 짓는다.
협주 1
幷序
서를 아울러 짓다
2명
君子之勇。必本於義。義生於情。激之者氣。氣以激之。又輔以智。以此當敵。何懼何畏。寧我捐身。活人是貴。活衆故軍完。軍完故身全。捐身得全。是所尤賢。烈烈我公。智勇兼焉。一國之城。三軍之天。云何不淑。奄若逝川。有焯其名。日月同懸。伯道無兒。天意茫然。刻詞貞珉。光于九泉。
군자의 용기는 반드시 의로움에 바탕한다 의로움은 정에서 나고 그것을 북받치게 하는 것은 기운이다 기운으로 북받치게 하고 또 슬기로 돕는다 이것으로 적을 맞으니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겁내랴 차라리 내 몸을 버리고 남을 살리는 것이 귀하다 무리를 살렸으므로 군사가 온전하고 군사가 온전하므로 몸이 온전하다 몸을 버리고도 온전함을 얻었으니 이것이 더욱 어진 바다 매섭고 매서운 우리 공이여 슬기와 용기를 아울렀네 한 나라의 성이요 삼군의 하늘이었네 어찌하여 좋지 못하여 문득 흐르는 냇물 같은가 그 이름이 빛나 해와 달과 함께 걸렸네 백도(伯道)에게 아들이 없었으니 하늘의 뜻이 아득하네 굳은 돌에 말을 새기니 저승에서 빛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