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전집 권38

동악에 올리는 제문東岳祭文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91자 · 낭독 2.8분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38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云云。人與人相知。恃舊相歡。則其所蘊蓄。無不顯陳。神明之分。亦不遠人。如其有素。寧視如新。曩者予以無似。剖符玆土。常事兩岳大王。其所賴固不貲矣。及捕孝心之黨。予又從軍。累更歲月。亦受大王之賜。獲全首領。以至今日。皆大王之力也。然則大王之於予。不可謂之無素矣。今者逆賊蜂起。叛逆王命。國家不能容忍。命愚等討之。自入都之日。親卽祠宇。畢露深衷。佇蒙陰援。西岳大王。果顯威靈。諭致東京元惡義庇於祠下。使我軍獲之。其不負如此。豈不嘉哉。獨我大王。嗇威吝德。不以赫然靈迹。報宿昔之歡。私心不能無望。然東京元惡。則以義庇爲最。草賊之巨者。無有如勃优者。今義庇雖死。勃优猶在。若大王速顯靈威。使勃优及其支黨。就我麾下。面受誅戮。則是日也。予當大統軍師。親謝祠前。以琴瑟鍾皷倡優之伎。樂我大王。大王其不享歟。云云。

운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알아 옛정을 믿고 서로 기뻐하면 그 쌓인 속을 드러내어 펴지 않음이 없습니다. 신명의 분수도 또한 사람에게서 멀지 않으니, 만약 본디 정이 있다면 어찌 새로 만난 듯이 보시겠습니까.

지난날 제가 못난 몸으로 이 땅에서 고을살이하며 늘 두 산의 대왕을 섬겼으니 그 힘입은 바가 참으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효심(孝心)의 무리를 잡을 때에 제가 또 군사를 좇아 여러 해를 지내면서 또한 대왕께서 내리심을 받아 목숨을 온전히 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다 대왕의 힘입니다. 그런즉 대왕께서 저에게 옛정이 없다 이를 수 없습니다.

이제 거스르는 도적이 벌떼처럼 일어나 임금의 명을 배반하니 나라에서 차마 용납할 수 없어 어리석은 저희에게 명하여 치게 하셨습니다. 동도에 들어가던 날부터 몸소 사당에 나아가 깊은 속을 다 드러내고 남모르는 도움을 기다렸습니다. 서악(西岳) 대왕께서는 과연 위엄 있는 신령을 드러내시어 동경(東京)의 우두머리 악인 의비(義庇)를 사당 아래로 이끌어 오게 하여 우리 군사가 잡게 하셨습니다. 그 저버리지 않으심이 이와 같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다만 우리 대왕께서는 위엄을 아끼고 덕을 인색히 하시어 빛나는 신령한 자취로 지난날의 기쁨을 갚지 않으시니, 사사로운 마음에 바람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경의 우두머리 악인은 의비가 으뜸이었고, 도적 떼 가운데 큰 자로는 발우(勃优)만 한 이가 없습니다. 이제 의비는 비록 죽었으나 발우는 아직 있습니다. 만약 대왕께서 빨리 신령한 위엄을 드러내시어 발우와 그 갈래 무리가 우리 깃발 아래 나아와 그 자리에서 베임을 받게 하신다면, 그날에는 제가 마땅히 군사를 크게 거느리고 몸소 사당 앞에 사례하며 거문고와 비파와 종과 북과 광대의 재주로 우리 대왕을 즐겁게 하겠습니다. 대왕께서는 흠향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운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