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이상국집 후집 서 — 이함序
嗣子涵謹言,大人平生所著多矣,然本不收蓄,又爲人取去不還,或焚棄之,《前集》有〈焚蒿詩〉,僅存十之二三,故難於編綴。凡大人所嘗遊踐儒家釋院及交游士大夫間,無不搜覓,得詩文凡若干首,分爲四十一卷,編成《前集》,侍郞李需序之。集成之後,又得遺逸及近所著古律詩八百四十七首、雜文五十首,成後集十二卷。噫,脫不幸不傳于世,亦足爲一門子姓傳家之寶矣!大人初登第時,嘗與四五同年,將遊通濟院,聯鞍唱和,公詩一句云:「蹇驢影裏碧山晚,斷鴈聲中紅樹秋。」四韻失三句。聞此詩流入于宋,大爲其宰相所賞。此少年時所賦特一首耳,其賞如此,况得見全集乎?又代琴學士讓官表云:「昔也帶雙學士,有譏越分者幾人,今則兼三大夫,將復置賢於何地?」此亦人所愛誦,而皆不得全篇以附于此,是一恨也。由此觀之,其遺珠漏玉之不見者,非止此而已矣。時辛丑十二月日,知洪州事副使兼勸農使管句學事將仕郞尙食奉御涵,謹序。
뒤를 이은 아들 함(涵)은 삼가 아룁니다. 아버님께서 평생 지으신 글이 많으나 본디 거두어 쌓아 두지 않으셨고, 또 남이 가져가고 돌려주지 않거나 더러 불살라 버리기도 하여 — 『전집』에 「초고를 태우다(焚蒿詩)」라는 시가 있습니다 — 겨우 열에 두셋만 남았으니, 그러므로 엮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버님께서 일찍이 드나드신 선비의 집과 절, 그리고 사귀신 사대부들 사이를 두루 뒤지지 않은 데가 없어 시와 글 얼마를 얻어 마흔한 권으로 나누어 『전집』을 엮었고, 시랑 이수(李需)가 서문을 지었습니다. 문집이 이루어진 뒤에 또 빠졌던 것과 요즈음 지으신 고시와 율시 팔백사십칠 수, 잡문 쉰 편을 얻어 『후집』 열두 권을 이루었습니다.
아, 혹 불행히 세상에 전하지 못하더라도 한 집안 자손이 대대로 전하는 보배가 되기에는 넉넉할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처음 급제하셨을 때 같은 해에 급제한 네댓 사람과 통제원(通濟院)에 놀러 가시며 안장을 나란히 하고 시를 주고받으셨는데, 공의 시 한 구절에 「절뚝이는 나귀 그림자 속에 푸른 산이 저물고, 외기러기 소리 가운데 붉은 나무에 가을이 든다」 하였습니다. 네 운(韻) 가운데 세 구절은 잃었습니다. 들으니 이 시가 송(宋)나라에 흘러 들어가 그 재상에게 크게 칭찬을 받았다 합니다. 이는 젊으실 때 지으신 겨우 한 수일 뿐인데도 그 기림이 이와 같았으니, 하물며 문집 전체를 보았더라면 어떠하였겠습니까.
또 금 학사(琴學士)를 대신하여 지으신 벼슬을 사양하는 표에 「지난날 학사 둘을 아울렀을 때도 분수를 넘었다고 나무라는 이가 몇이나 있었는데, 이제 대부 셋을 겸하게 되니 장차 어진 이를 어느 자리에 두려 하십니까」 하였습니다. 이 또한 사람들이 즐겨 외우는 것이나, 모두 온 편을 얻어 여기에 붙이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한 가지 한입니다.
이로 미루어 보면 빠뜨린 구슬과 새어 나간 옥으로서 보이지 않는 것이 이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때는 신축년 십이월 어느 날, 지홍주사 부사 겸 권농사 관구학사 장사랑 상식봉어 함이 삼가 서문을 씁니다.
협주 1
1241年
124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