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후집 권1

하음(河陰) 객사 서쪽 행랑에 붙어 지내며 짓다寓河陰客舍西廊有作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2 · 한자 56자 · 낭독 0.6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新京構屋日滋多。猶似千蚕競作窠。我豈孤獐堪野處。河陰官舍借爲家。

새 서울에 집 짓는 일이 날로 늘어 마치 천 마리 누에가 다투어 고치를 짓는 듯하네 내가 어찌 외로운 노루라고 들에서 지낼 수 있으랴 하음의 관사를 빌려 집으로 삼았네

협주 1

移都後。予獨於新京未構屋。擧家借河陰客館西廊居之。累月乃去。

도읍을 옮긴 뒤 나만 새 서울에 집을 짓지 못하여, 온 집안이 하음 객관의 서쪽 행랑을 빌려 살다가 여러 달 만에야 떠났다.

數間虛館借西偏。榛莽深深碧峀邊。瓢飮自寬聊勉耳。從今始有僞顔淵。

몇 칸 빈 객관의 서쪽 귀퉁이를 빌리니 덤불이 깊고 깊은 푸른 멧부리 가이네 표주박 물 한 모금에도 스스로 넉넉히 여겨 애써 견딜 뿐이니 이제부터 비로소 가짜 안연(顔淵)이 있게 되었네

협주 1

時受祿未周。屢在陳。

그때 녹봉을 받은 지 한 해가 차지 않아 자주 양식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