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열여드렛날 볕을 쬐다가, 남헌에서 시 제목을 찾으려고 책을 펼쳐 흰 백(白) 자를 얻었다. 흰 것은 바탕이다. 내가 이제 물러나기를 청하여 본바탕을 따르려 하니 내 뜻에 맞는다. 그래서 흰 것을 읊기로 제목을 삼고, 다시 뜰 정(庭) 자를 뽑아 운으로 삼아 지었는데 나도 모르게 여러 구에 이르렀다. 이어 이 시랑을 불러 함께 지었다十一月十八日暴日。南軒欲覓題爲詩。因披書冊。遂得白字。乃曰白者質也。吾方乞退。將從本質。愜吾志也。遂以詠白爲題。復探得庭字爲韻賦之。不覺多至累句。仍邀李侍郞同賦。
質素由來貴。丹黃勿要經。圭磨寧有玷。璧碎不渝形。積雪鋪寒屋。平沙布漫汀。三冬氷正合。八月露初零。杲杲當中日。盈盈報曙星。華堂崇璐砌。香寢擁銀屛。詩老衰髯變。佳姬醉面醒。梨花開滿苑。柳絮落堆庭。蚕緖抽難斷。鮫綃織不停。謫仙名可記。居易姓堪銘。海澨鯨遺骨。山陬鶴墮翎。道裝披羽服。商律肅金刑。石齒舂奔瀨。潮頭起大溟。雉來彰魏德。蛇死哭秦靈。粲粒方研臼。新刀始發硎。悲絲應自惜。歌紵亦宜聽。縞帶垂瑤佩。瓊漿酌玉甁。邇來憎俗子。無復眼迴靑。
흰 바탕은 예로부터 귀하니 붉고 누른 물을 들이려 하지 마라 규옥은 갈면 어찌 티가 남으랴 둥근 옥은 부서져도 그 바탕이 변하지 않네 쌓인 눈은 찬 집을 덮고 고른 모래는 아득한 물가에 펼쳐졌네 한겨울에는 얼음이 한창 얼어붙고 팔월에는 이슬이 처음 내리네 밝고 밝은 것은 한낮의 해요 반짝이는 것은 새벽을 알리는 별이네 화려한 집에는 옥돌 섬돌을 높이고 향기로운 침실에는 은병풍을 둘렀네 시 짓는 늙은이는 쇤 수염이 희어지고 고운 여인은 취한 얼굴이 깨어 희어지네 배꽃은 동산 가득 피고 버들솜은 뜰에 떨어져 쌓이네 누에고치 실은 뽑아도 끊어지지 않고 인어가 짠 비단은 짜기를 멈추지 않네 귀양 온 신선은 그 이름이 흰 백이요 백거이는 그 성이 흰 백이네 바닷가에는 고래가 뼈를 남기고 산모퉁이에는 학이 깃을 떨구네 도사의 차림은 흰 깃옷을 걸치고 가을 가락은 서릿발 같은 형벌로 엄숙하네 바위 이빨은 내닫는 여울을 찧고 밀물 머리는 큰 바다에서 일어나네 흰 꿩이 와서 위(魏)나라 덕을 드러내고 흰 뱀이 죽으매 진(秦)나라 신령이 울었네 흰 쌀알은 이제 막 절구에 찧고 새 칼은 이제 숫돌에서 갈려 나오네 흰 실을 보고 슬퍼함은 스스로 아낄 만하고 흰 모시의 노래 또한 들을 만하네 흰 비단 띠에는 옥패를 드리우고 구슬 같은 맑은 술을 옥병에 따르네 요즈음은 속된 이가 미워 다시는 눈을 푸르게 돌리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