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후집 권2

백낙천의 병중 열다섯 수에 차운하여 화답하다次韻和白樂天病中十五首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88자 · 낭독 2.7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2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予本嗜詩。雖宿負也。至病中尤酷好。倍於平日。亦不知所然。每寓興觸物。無日不吟。欲罷不得。因謂曰此亦病也。曾著詩癖篇以見志。盖自傷也。又每食不過數匙。唯飮酒而已。常以此爲患。及見白樂天後集之老境所著。則多是病中所作。飮酒亦然。其一詩略云。我亦定中觀宿命。多生債負是歌詩。不然何故狂吟詠。病後多於未病時。酬夢得詩云。昏昏布衾底。病醉睡相和。服雲母散詩云。藥消日晏三匙食。其餘亦倣此。予然後頗自寬之曰。非獨予也。古人亦爾。此皆宿負所致。無可奈何矣。又白公病暇滿一百日解綬。予於某日將乞退。計病暇一百有十日。其不期相類如此。但所欠者。樊素,少蠻耳。然二妾亦於公年六十八。皆見放。則何與於此時哉。噫。才名德望。雖不及白公遠矣。其於老境病中之事。往往多有類予者。因和病中十五首。以紓其情。

나는 본디 시를 즐기니 이는 묵은 빚이기도 하다. 병중에 이르러서는 더욱 혹독히 좋아하여 여느 때보다 갑절이나 되는데 나도 그 까닭을 모르겠다. 흥이 일고 사물에 부딪칠 때마다 읊지 않는 날이 없어 그만두려 해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도 병이라 하고, 일찍이 「시벽(詩癖)」 편을 지어 뜻을 보였으니 스스로 가슴 아파한 것이다.

또 끼니마다 몇 술을 넘기지 못하고 오직 술만 마실 뿐이어서 늘 이것을 걱정으로 삼았다. 그런데 백낙천(白樂天)의 후집 가운데 늘그막에 지은 것을 보니 대개 병중에 지은 것이고 술을 마신 일도 그러하였다.

그 한 시에 대략 이르기를 「나도 선정 가운데 지난 생을 보니 여러 생에 진 빚이 바로 노래와 시더라.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미친 듯 읊어 병든 뒤가 병들기 전보다 많겠는가」 하였다. 몽득(夢得)에게 답한 시에는 「어둑어둑 베이불 속에서 병과 취기와 잠이 서로 섞인다」 하였고, 운모산을 먹으며 지은 시에는 「약 기운이 스러지고 해가 늦도록 세 술을 먹는다」 하였으니 그 나머지도 이와 비슷하다.

나는 그제야 자못 스스로 너그러이 여겨 말하였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옛사람도 그러하였으니, 이는 모두 묵은 빚이 부른 것이라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또 백공은 병으로 쉰 날이 백 일을 채우자 인끈을 풀었는데, 나도 아무 날에 물러나기를 청하려 하니 병으로 쉰 날을 헤아리면 백열흘이다. 기약하지 않았는데도 서로 닮음이 이와 같다. 다만 모자란 것은 번소(樊素)와 소만(少蠻)뿐이다. 그러나 그 두 첩도 공의 나이 예순여덟에 다 내보냈으니 지금 이때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아, 재주와 이름과 덕망이야 백공에 훨씬 미치지 못하나, 늘그막 병중의 일에는 이따금 나와 닮은 것이 많다. 그래서 병중 열다섯 수에 화답하여 그 마음을 푼다.

협주 1

幷序

서문을 함께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