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이름 시 뒤에 붙인 글洞名詩呈後洞朴僕射,朴學士,李學士 跋尾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5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朴僕射見之曰。此洞本稱萬石。盖因多石而號之也。予抵掌絶倒曰。雖命名之意不同。無一字有異者。是豈素定於冥然而不使之變改耶。人皆已稱。則吾之命名。非必敎而使道也。不亦快乎。
박 복야가 이를 보고 말하기를 「이 골은 본디 만석이라 불렀다. 돌이 많아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하였다.
내가 손뼉을 치며 넘어지게 웃고 말하였다. 「이름을 붙인 뜻은 다르나 한 자도 다른 것이 없다. 이는 어찌 아득한 가운데 미리 정해져 바뀌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모두 이미 그렇게 불렀으니, 내가 이름한 것은 꼭 가르쳐 말하게 한 것이 아니다. 또한 통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