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후집 권5

이 상국이 「농(籠)」 자 운의 시에 화답해 부쳐 오기에 차운하다次韻李相國和籠字韻詩見寄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3 · 한자 257자 · 낭독 2.6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5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1서

昨者。奉閱相國垂和予舊著籠字韻詩見寄。謹詳辭語。綺靡琬麗。實宰相富貴中語也。若爾。予亦曾備相位。何詩之癯瘦。令人不喜見之耶。甚嘆甚嘆。此詩予已作十首。才窮。似不能更和。然以見及之意。有不可虛孤者。謹次韻奉呈云。

어제 상국께서 내가 예전에 지은 「농(籠)」 자 운의 시에 화답해 부쳐 주신 것을 받들어 읽었다. 삼가 그 말을 살피니 곱고 아름다워 참으로 재상의 부귀한 가운데서 나온 말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일찍이 재상 자리에 있었는데 어찌 내 시는 이렇게 여위어 사람이 보기 좋아하지 않게 하는가. 몹시 한탄스럽고 한탄스럽다.

이 시를 나는 이미 열 수나 지어 재주가 다하였으니 다시 화답하지 못할 듯하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주신 뜻을 헛되이 저버릴 수 없어, 삼가 차운하여 받들어 올린다.

협주 2

仁植

인식(仁植)

幷序

서를 아울러 붙이다

2첫째 수

到頭風月喜形容。萬像難逃筆下籠。不獨時花姸李賀。端知美玉麗崔融。平生憤見猖狂虜。出將猶爲矍鑠翁。鎭塞舊幢油尙碧。斬胡遺劒血餘紅。山川盡入驅馳內。鈞軸今歸掌握中。韓鉞謝篇無一缺。官班曷不帶西東。

마침내 바람과 달을 형용하기를 즐기시니 온갖 형상이 붓 아래 그물을 벗어나기 어렵네 때맞은 꽃의 고움이 이하(李賀)만이 아니요 아름다운 옥의 고움이 최융(崔融)임을 알겠네 평생 미쳐 날뛰는 오랑캐를 보고 분해하였고 장수로 나가서는 도리어 정정한 늙은이가 되었네 변방을 누르던 옛 깃발은 기름빛이 아직 푸르고 오랑캐를 베던 남은 칼엔 피가 아직 붉네 산천이 모두 말달리는 안에 들었고 나라의 저울대가 이제 그대 손에 돌아왔네 무장의 도끼와 문사의 글이 하나도 모자람 없으니 벼슬 반열에 어찌 동서를 아울러 띠지 않으랴

협주 1

韓鉞謝篇 — 도끼는 장수의 권위, 글은 문사의 문장을 이른다.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저본에 이름이 없다. ― 옮긴이

3둘째 수

伊昔朝端濫自容。何殊僥幸獻空籠。拜章曾解名韁束。學定方觀性水融。豈意英明黃閣老。猶思閑淡白雲翁。洒成飛札神虬黝。唾送彫章海蜃紅。鸞省追陪涯分外。馬嵓遊賞夢魂中。懸懸日欲攀淸話。其柰城南隔闕東。

그 옛날 조정의 으뜸 자리에 외람되이 몸을 두었으니 요행으로 빈 새장을 바친 것과 무엇이 다르랴 글을 올려 일찍이 이름의 고삐를 풀었고 선정을 배워 바야흐로 성품의 물이 트임을 보네 어찌 뜻하였으랴 영명하신 재상 어른이 오히려 한가롭고 담박한 백운 늙은이를 생각하실 줄 뿌려 이룬 날랜 글씨는 신령한 규룡처럼 검고 뱉어 보낸 아로새긴 글은 바다 신기루처럼 붉네 중서성에서 모시고 따름은 내 분수 밖이요 마암(馬嵓)에서 놀던 일은 꿈속에 있네 날마다 간절히 맑은 이야기에 매달리고 싶으나 성 남쪽과 대궐 동쪽으로 떨어져 있음을 어이하랴

협주 4

予近讀楞嚴。公詩及之。故云。

나는 요즈음 「능엄경」을 읽는데 공의 시가 그것을 말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했다.

予自號白雲居士。

나는 스스로 백운거사라 불렀다.

予與公同郡。郡有馬嵓。甞遊賞處。

나와 공은 같은 고을 사람이다. 고을에 마암이 있는데 일찍이 놀며 구경하던 곳이다.

黃閣·鸞省 — 황각은 재상의 관청, 난성은 중서성의 별칭이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