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후집 권5

이 학사가 정 비감의 먹으로 그린 대와 초상 시에 화답해 사례한 시를 부쳐 오기에 차운하다 — 먹으로 그린 대次韻李學士和謝丁秘監墨竹影子詩見寄 墨竹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170자 · 낭독 1.8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5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世或畫竹君。或與與可亞。自從丁君生。其筆久已捨。假若較相看。夷豈混諸夏。不忍汚我眼。淸淨蒲萄朶。丁公爲我掃。與子方閱過。一閱便成詩。此竹又增價。兩公誤才吾。大手不辭寫。我本浮虛人。暫作前糠簸。釣得由佯賢。果於我計墮。不然將我材。安得此雄跨。時來天亦憐。亦得被人可。至寶得分外。世人應怪我。秘藏勿輕出。人情多巧詐。君詩播於世。爛若耀丹赭。丁筆若示人。豪奪又誑借。奈知二君名。足流千載下。草木同腐朽。孰有如予者。

세상에서 더러 대를 그리는 이를 여가(與可)의 버금이라 하기도 하네 정군이 난 뒤로부터 그 붓들은 오래전에 이미 버려졌네 만약 견주어 본다면 오랑캐가 어찌 중원에 섞이랴 차마 내 눈을 더럽힐 수 없으니 맑고 깨끗한 포도 가지 같네 정공이 나를 위해 쓸어 그리고 그대와 함께 바야흐로 훑어보았네 한 번 보고 곧 시를 이루니 이 대가 또 값이 오르네 두 공이 나를 재주 있다 잘못 여겨 큰 솜씨로 그리기를 사양하지 않았네 나는 본디 들뜨고 헛된 사람이라 잠시 앞선 겨가 까불려 오른 격이네 낚아 얻은 것은 어진 체한 데서 말미암았으니 과연 두 공이 내 꾀에 떨어진 것이네 그렇지 않고 내 재목을 가지고서야 어찌 이렇게 웅걸하게 걸터앉으랴 때가 오니 하늘도 가엾이 여겨 또한 남에게 옳다 함을 얻었네 지극한 보배를 분수 밖에 얻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응당 나를 괴이히 여기리 감추어 두고 가벼이 내놓지 마오 사람의 마음에 교묘한 속임이 많으니 그대의 시가 세상에 퍼지면 붉은 빛이 빛나듯 찬란하리 정공의 붓을 남에게 보이면 힘으로 빼앗거나 속여 빌려 가리 어이하랴 두 분의 이름이 천 년 뒤까지 흐르기에 넉넉함을 풀과 나무와 함께 썩어 없어질 이로는 나 말고 또 누가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