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사가 정 비감의 먹으로 그린 대와 초상 시에 화답해 사례한 시를 부쳐 오기에 차운하다 — 초상次韻李學士和謝丁秘監墨竹影子詩見寄 影子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5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古今所圖形。廊廟經綸手。不然將帥材。虎烈無與偶。麒麟閣上人。何者非汰取。我才本無用。何况貌復醜。生時人已憎。何必規身後。具體雖爲人。無知僅類獸。方公仕進時。儀彩映朝右。正觀蔑邪睨。矩步無輕驟。淸班三十年。胷次絶纎垢。何不寫君容。世世傳之壽。反畫此頑翁。皤腹長盛酒。幻身對幻影。何者又叟叟。再拜請丁卿。又貌我公不。
예나 이제나 그려지는 모습은 조정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솜씨를 지닌 이요 그렇지 않으면 장수의 재목이라 범처럼 매서워 짝할 이가 없네 기린각(麒麟閣) 위의 사람들이 어느 누가 가려 뽑힌 이가 아니랴 내 재주는 본디 쓸 데가 없고 하물며 모습마저 추함에랴 살아서도 사람들이 이미 미워하는데 어찌 굳이 죽은 뒤를 꾀하랴 몸을 갖추어 사람이 되기는 했으나 아는 것이 없어 겨우 짐승에 가깝네 그대가 벼슬에 나아갈 때에는 거동과 풍채가 조정에 빛났네 바르게 보아 곁눈질이 없었고 법도 있는 걸음에 가벼이 내닫음이 없었네 맑은 반열에 삼십 년이었으되 가슴속에는 실낱만 한 때도 없었네 어찌 그대의 모습을 그려 대대로 길이 전하지 않는가 도리어 이 미련한 늙은이를 그렸으니 불룩한 배에 늘 술을 담은 자일세 헛된 몸이 헛된 그림자를 마주하니 어느 쪽이 또 늙은이인가 두 번 절하고 정경(丁卿)께 청하노니 우리 공의 모습도 그려 주지 않으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