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 초이레에 추밀 박공을 찾아가 새로 지은 집을 보니 넉넉함과 깨끗함을 아울러 갖추어 모두 뜻밖이라 참으로 그냥 보아 넘길 수 없기에 술이 거나해지자 붓을 달려 본 것을 적어 받들어 올리다九月初七日。訪樞府朴公觀所構新宅。富貴蕭洒兼備。皆出意表。誠不可虛賞。及酒酣走筆。記所見奉呈云。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6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我有一區廬。風雨猶不庇。賦分元自窮。徒忝丞相位。觀公此臺榭。幻出神仙地。他人費鉅萬。爭肯略侔似。由公眼匠妙。所作出非意。如此迺相門。而我安敢企。有竹立脩脩。不與江南異。奇花與美卉。雜錯紛錦綺。黃菊冒霜開。已可泛金蕊。何必待重九。不妨先日二。主人聞此言。拍手卽大喜。呼出玉樽來。今日能事已。
나에게 한 칸 오두막이 있으나 비바람도 오히려 가리지 못하네 타고난 분수가 본디 궁하여 부질없이 정승 자리만 더럽혔네 공의 이 누대를 보니 신선의 땅을 홀연히 불러낸 듯하네 남들이 큰돈을 쓴들 어찌 조금이라도 견줄 수 있으랴 공의 눈썰미가 묘한 데서 말미암아 지은 것이 뜻밖에서 나왔네 이래야 정승의 집이니 내가 어찌 감히 바라랴 대나무가 길쭉길쭉 서 있어 강남의 것과 다르지 않네 기이한 꽃과 아름다운 풀이 뒤섞여 비단처럼 어지럽네 누런 국화가 서리를 무릅쓰고 피어 이미 금빛 꽃술을 술에 띄울 만하네 어찌 반드시 중양절을 기다리랴 이틀 앞당긴들 거리낄 것 없네 주인이 이 말을 듣고 손뼉 치며 곧 크게 기뻐하여 옥 술동이를 불러내 오니 오늘 할 일은 다 되었네
협주 2
椐。
거(椐)다.
予常言宰相之窮。無有如我者。
내가 늘 말하기를 「재상 가운데 궁하기로는 나 같은 이가 없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