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후집 권7

김 학사에게 부치다寄金學士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2 · 한자 281자 · 낭독 3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7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愚聞先賢於儒門。制十二徒。徒各置齋。有多有少。每夏一集隷業。名曰夏天都會。近因國家多梗。此風幾絶。今聞我齋得成夏課。何喜如之。雖他齋未爾。是迺儒風復盛之漸。他齋亦從而興矣。何必憂哉。此皆尙書學士指麾之力也。豈不慶幸哉。謹成古詩奉寄。

제가 듣기로 옛 어진 이들이 유학의 문에 십이도(十二徒)를 두었고, 무리마다 학당(齋)을 두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였습니다. 여름마다 한 번씩 모여 학업을 익혔으니 이름을 「여름 모임」이라 하였습니다.

요사이 나라에 어려움이 많아 이 풍습이 거의 끊겼는데, 이제 우리 학당이 여름 공부를 이루었다 하니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른 학당이 아직 그렇지 못하다 하여도 이것이 곧 유학의 기풍이 다시 성해지는 시초이니, 다른 학당도 따라서 일어날 것입니다.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

이는 모두 상서 학사께서 지휘하신 힘입니다. 어찌 경사롭고 다행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옛 시 한 편을 지어 받들어 부칩니다.

협주 2

敞○幷序○庚子年

창(敞). 서를 아울렀다. 경자년.

「여름 모임」은 저본에 하천도회(夏天都會)라 하였다.

自卜新京今幾年。吾徒舊範危墮地。賴予不死餘喘存。得聞夏課羣學子。遙知林林白面生。夫子影前成拜起。有川能似歸法無。想見冠童浴沂水。有如霖雨彌數旬。忽見晴陽出明媚。又如嘉穀垂欲枯。一朝沐雨得生意。細思此是君之力。感古喜今還抆淚。我今已歷三事聯。子亦行登丞相位。原其所自此其根。根若不牢安所恃。君知體莫重於斯。公卿搢紳多出是。鄕猶有校家有塾。況可國中無是事。勸公更礪成人心。激起後生毋少弛。我於此時雖就木。地下猶能抃舞喜。

새 서울에 터를 잡은 지 이제 몇 해인가 우리 무리의 옛 법도가 땅에 떨어질 뻔하였네 다행히 내가 죽지 않고 남은 숨이 붙어 있어 여러 학생이 여름 공부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네 멀리서도 알겠네, 숲처럼 늘어선 얼굴 흰 서생들이 공자의 영정 앞에서 절하고 일어서는 모습을 노래하며 돌아오던 그 자리를 닮은 냇물이 거기 있으려나 관 쓴 이와 아이들이 기수(沂水)에서 미역 감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 마치 장맛비가 여러 순(旬)을 이어지다가 문득 갠 볕이 밝고 곱게 나오는 듯하고 또 좋은 곡식이 늘어져 마르려 하다가 하루아침에 비를 맞아 살 뜻을 얻은 듯하네 곰곰이 생각하니 이는 그대의 힘이라 옛일에 느껍고 오늘이 기뻐 도리어 눈물을 닦네 나는 이제 삼공의 반열을 이미 거쳤고 그대도 머지않아 승상의 자리에 오르리라 그 말미암은 바를 캐면 이것이 그 뿌리이니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무엇을 믿으랴 그대는 알리라, 이보다 무거운 바탕이 없음을 공경과 벼슬아치가 대개 여기서 나왔네 시골에도 향교(鄕校)가 있고 집에도 글방이 있거늘 하물며 나라 안에 이런 일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공에게 권하노니 사람 이루려는 마음을 더 갈고 후배들을 떨쳐 일으켜 조금도 늦추지 마시라 내가 그때에는 비록 관에 들어가 있더라도 땅 밑에서 손뼉 치고 춤추며 기뻐하리라

협주 1

歸法 — 「논어」 선진편에서 기수에 목욕하고 노래하며 돌아왔다(浴乎沂 詠而歸)고 한 대목을 가리킨다. 歸法을 「옛 법으로 돌아가기」로 끊어 읽기도 한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