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국이 화답해 오기에 다시 차운하여 받들어 답하다相國見和。復次韻奉答。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7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我家曾不種花奇。何日移栽到錦披。處士休誇鸚鵡賦。相君今詠鳳凰枝。絳葩紅蕊遙猶見。尖觜豐膺捻始知。不有嘉賓留逸唱。人間那有此花詞。
우리 집엔 일찍이 기이한 꽃을 심은 적 없는데 어느 날 옮겨 심어 비단이 펼쳐지듯 되었나 처사는 「앵무부」를 자랑하지 마오 상공께서 이제 봉황 가지를 읊으셨으니 다홍 꽃잎과 붉은 꽃술은 멀리서도 보이지만 뾰족한 부리와 부푼 가슴은 만져 보아야 비로소 알겠네 아름다운 손님이 뛰어난 노래를 남기지 않았다면 인간 세상에 어찌 이 꽃의 노래가 있으랴
협주 1
詞有鳳凰枝。又命家有鳳凰支。
그 글에 「봉황의 가지」라는 말이 있다. 또 그 집을 「봉황 가지가 있는 집」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