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러 어진 이의 글씨 법을 논한 서東國諸賢書訣評論序
夫書契之興。尙矣。自蒼頡制字以代結繩。然後鳥跡蝌蚪篆籒隷書之法作焉。寢及後代。踵事增華。於是眞行草飛白之制。各體互興。若秋菊春蘭俱不可廢。且古之聞人韻士之工於書者。不可勝算。有攻一體者。有兼之者。遠至于晉。以王羲之爲第一。前則梁武帝評其體曰。龍跳天門。虎臥鳳閣。後有唐文皇贊之曰。煙霏露結。鳳翥龍蟠。心慕手追。此人而已。向所謂古之聞人不爲不多。而獨擧逸少者。蓋我國之第一人者。有與逸少無異者。故先擧其偶者耳。第一者其誰。金生是已。此迺神筆也。何以言之。世傳嘗有人忽至金生前。請寫帝釋經。寫畢。問所從來。其人曰。我帝釋使者也。命我請書故來耳。因忽不見。又書安養寺額。隔數年。其釘額之屋南傾側。卽請書屋北。然後其屋還平。又寫靑龍寺額。常有雲霧籠焉。又學士洪灌齎其書入宋。其朝諸賢見之。嘆曰。不意今日見王右軍眞蹟。灌答曰。不是右軍書。迺我國金生書。屢言之終不信焉。則金生之書。與右軍無異明矣。然則當以金生處神品之第一。
무릇 글자의 생겨남은 오래되었다. 창힐(蒼頡)이 글자를 지어 노끈 매듭을 대신한 뒤로 새 발자국 글씨와 올챙이 글씨, 전서와 주문(籒文)과 예서의 법이 생겼다. 차츰 뒷세상에 이르러 앞사람의 일을 이어 꾸밈을 더하니, 이에 해서·행서·초서·비백(飛白)의 체가 갈래마다 번갈아 일어나 가을 국화와 봄 난초처럼 어느 것도 버릴 수 없게 되었다.
또 옛날에 이름난 이와 운치 있는 선비로서 글씨에 능한 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한 체만 파고든 이도 있고 여러 체를 겸한 이도 있다. 멀리 진(晉)나라에 이르러서는 왕희지(王羲之)를 으뜸으로 삼는다. 앞서 양나라 무제는 그 체를 평하여 「용이 하늘 문으로 뛰어오르고 범이 봉황 누각에 누웠다」고 하였고, 뒤에 당나라 문황은 기려 「연기가 흩날리고 이슬이 맺힌 듯하며 봉황이 날아오르고 용이 서린 듯하다. 마음으로 사모하고 손으로 뒤쫓을 이는 이 사람뿐이다」라고 하였다.
앞서 말한 옛날의 이름난 이가 적지 않은데도 유독 왕희지만을 든 것은, 대개 우리나라의 으뜸가는 이 가운데 왕희지와 다름없는 이가 있으므로 먼저 그 짝이 될 이를 든 것일 뿐이다.
으뜸가는 이가 누구인가. 김생(金生)이 바로 그다. 이는 곧 신묘한 붓이다. 어찌하여 그렇게 말하는가.
세상에 전하기를, 일찍이 어떤 사람이 홀연히 김생 앞에 이르러 제석경(帝釋經)을 써 달라고 청하였다. 다 쓰고 나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니, 그 사람이 「나는 제석의 사자다. 나에게 글씨를 청하라 하시기에 왔을 뿐이다」라고 하고는 문득 보이지 않았다.
또 안양사(安養寺)의 현판을 썼는데, 몇 해가 지나 그 현판을 박은 집이 남쪽으로 기울었다. 곧 청하여 집 북쪽에 글씨를 쓰게 하니 그 뒤에 그 집이 도로 반듯해졌다. 또 청룡사(靑龍寺)의 현판을 썼는데 늘 구름과 안개가 서려 있었다.
또 학사 홍관(洪灌)이 그 글씨를 가지고 송나라에 들어갔는데, 그 조정의 여러 어진 이들이 이를 보고 감탄하여 「뜻밖에도 오늘 왕희지의 참 글씨를 보는구나」라고 하였다. 홍관이 「이는 왕희지의 글씨가 아니라 우리나라 김생의 글씨입니다」라고 답하였으나, 여러 번 말하여도 끝내 믿지 않았다. 그러니 김생의 글씨가 왕희지와 다름없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마땅히 김생을 신품(神品)의 첫째에 두어야 한다.
협주 2
幷贊○晉陽公令述
찬을 아울렀다. ○진양공(晉陽公)이 짓게 하였다.
저본은 왕희지(王羲之)를 일소(逸少, 그의 자)·왕우군(王右軍, 그의 벼슬 이름)·우군으로도 적었으나 한 사람이므로 「왕희지」로 모았다. ― 옮긴이
王師坦然書。於行尤所長。每一披閱。精彩爛發。如芙蓉之出池中。含骨鯁。掩以瓊肌。如巧工之施材。穩當相銜。亦無彫鑿之痕矣。此豈學而得之。必受之天者歟。然則當以坦然居神品之第二。
왕사 탄연(坦然)의 글씨는 행서에 더욱 뛰어나다. 한 번 펼쳐 볼 때마다 정채가 찬란히 피어나 연꽃이 못 가운데서 솟아오르는 듯하다. 굳센 뼈대를 머금고 구슬 같은 살결로 덮었으며, 솜씨 좋은 목수가 재목을 쓰듯 알맞게 서로 물려 또한 깎고 쪼아 낸 자국이 없다. 이것이 어찌 배워서 얻은 것이랴. 반드시 하늘에서 받은 것이리라. 그러므로 마땅히 탄연을 신품의 둘째에 두어야 한다.
晉陽公崔書。於眞行草。無所不兼。草則如迅鶻飛空。輕風卷霧。眞行則如陣馬齊首。步驟閑舒。無不中規。然中有奔逸薾雲之氣。少放則自亦不能遽遏也。公嘗書大觀殿額。時奇相國亦能書額。見公所書。愕然自服。信可謂神品矣。但聞公於某品。皆不欲居。令漏脫之。此謙德也。美則美矣。然此非私意。迺一國之公望也。若以謂吾今當國。人或面諛。則其中亦有正直之士。豈皆取一時之媚。傳爲萬世之所謗耶。決不然矣。今雖不爾。後世之評者。亦如今議。公雖欲避之。得乎。請處之神品之第三。
진양공 최씨의 글씨는 해서와 행서와 초서에 겸하지 않은 것이 없다. 초서는 날랜 송골매가 하늘을 나는 듯하고 가벼운 바람이 안개를 걷는 듯하며, 해서와 행서는 진을 친 말들이 머리를 나란히 하여 걷고 달림이 한가롭고 느긋하여 법도에 맞지 않음이 없다. 그러나 그 가운데 내달아 구름을 뚫는 기운이 있어 조금만 놓으면 스스로도 대뜸 막지 못한다. 공이 일찍이 대관전(大觀殿)의 현판을 썼는데, 그때 기 상국도 현판 글씨를 잘 썼으나 공이 쓴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스스로 굴복하였으니 참으로 신품이라 할 만하다.
다만 듣건대 공은 어느 품수에도 다 들기를 원하지 않아 빠뜨리게 하였다고 하니, 이는 겸손한 덕이다. 아름답기는 아름답다. 그러나 이는 사사로운 뜻이 아니라 온 나라의 공변된 바람이다. 만일 「내가 지금 나라를 맡고 있으니 사람들이 혹 면전에서 아첨하는 것이다」라고 여긴다면, 그 가운데도 또한 곧고 바른 선비가 있다. 어찌 다들 한때의 아첨을 취하여 만세에 헐뜯길 일을 전하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제 비록 그러하지 않더라도 뒷세상에 평하는 이가 또한 지금의 의논과 같을 것이니, 공이 비록 이를 피하고자 한들 되겠는가. 청컨대 신품의 셋째에 두겠다.
柳員外伸書。大抵好合行草二體書之。昔王子敬好爲此體。人謂之非草非行。亦謂之行草。伸之於子敬。雖所書之體不同。亦其遺法也。其體純尙筋骨。以壯士拔釖將赴敵場比之。可也。以驥馬瘦立。益露駿骨況之。亦可也。此亦通神。非一生所習。當居神品之第四。
원외 유신(柳伸)의 글씨는 대체로 행서와 초서 두 체를 합하여 쓰기를 좋아하였다. 옛날 왕자경(王子敬)이 이 체를 즐겨 썼는데, 사람들이 초서도 아니고 행서도 아니라 하여 또한 행초라 하였다. 유신은 자경에 대하여 비록 쓴 체가 같지는 않으나 또한 그가 남긴 법을 이은 것이다.
그 체는 오로지 힘줄과 뼈를 숭상하니, 장사가 칼을 빼어 들고 싸움터로 나아가는 것에 견주어도 좋고, 준마가 여위어 서서 뛰어난 뼈대를 더욱 드러낸 것에 견주어도 또한 좋다. 이 또한 신묘함에 통하였으니 한평생 익혀서 될 일이 아니다. 마땅히 신품의 넷째에 두어야 한다.
君主則太祖仁宗明宗皆工書。然至尊非評品所到。皆略之。其餘士大夫桑門逸士之工書者。有若學士洪灌,宰相文公裕,宗室僧統冲㬢,首座道休,侍郞朴孝文,宰相柳公權,邵城侯金居實,宰相奇洪壽,學士張自牧,山人悟生了然等。亦可以妙品絶品次序焉。然以予有未見其書者。故今不得優劣之。迨摠集而觀。然後備論。不爾。俟後之達識有以明白甄別耳。
임금으로는 태조와 인종과 명종이 다 글씨에 능하였다. 그러나 지극히 높은 분들은 품수를 매길 자리가 아니므로 다 줄인다.
그 밖에 사대부와 승려와 숨어 사는 선비로서 글씨에 능한 이로는 학사 홍관, 재상 문공유(文公裕), 종실 승통 충희(冲㬢), 수좌 도휴(道休), 시랑 박효문(朴孝文), 재상 유공권(柳公權), 소성후 김거실(金居實), 재상 기홍수(奇洪壽), 학사 장자목(張自牧), 산인 오생(悟生)과 요연(了然) 들이 있다. 이들도 또한 묘품과 절품으로 차례를 매길 만하다.
그러나 내가 그 글씨를 보지 못한 이가 있으므로 이제 낫고 못함을 가리지 못한다. 다 모아서 본 뒤에라야 갖추어 논하겠다. 그렇지 못하면 뒷날 밝은 식견을 가진 이가 분명하게 가려내 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협주 1
神品四賢各贊
신품에 든 네 어진 이에게 각각 찬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