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후집 권11

박 추부의 유가당 기朴樞府有嘉堂記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638자 · 낭독 6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距斗城數百許步。有地之控形勝吸秀氣。勢成金盞者。於焉有洞曰萬石。父老相傳云。蓋以多石而名之也。予曰。非也。此洞當有俸八萬石之慶而云耳。非必以石之多也。其後果有士大夫多來家焉。今又本兵樞府相國朴公來卜其居。方新其宅也。邀予及賓友落之。且令閱其所營制度何似。予觀之曰。美矣盡矣。無以復加矣。大抵世之富貴者之搆屋也。多以回萬牛之材。豐其棟宏其柱。壯則壯矣。侈云侈矣。然未有蕭洒出塵之意。今公所搆。有異於是。大小得中。不□〔⿰扌刳〕不隘。其華靡則可謂臻其極。而然中有洒落物外之想。吾不知其所以然而然。此豈公之心匠眼匠所致然耶。凡作堂三間。用二間爲廳事。其上皆以承塵塡之。凡十二井。悉文以丹雘藻繢。光彩煥發。奪人目睛。求名於予。遂名之曰有嘉。蓋取此宅當有嘉慶之意。亦取詩所謂我有嘉賓。以是堂爲迎迓賓客之所故也。隔一間爲佛室。作齋心之所。乃至佛儀。無所不備。入處可以淸心。因名曰靜慮。蓋取禪那。此云靜慮者也。其傍邊左右地。淨如湔洗削平。人不敢唾焉。繞宅環廻。皆植以黃花。花凡十八種。繁艶異常。時已侵冬。黃白交開。爛熳紛糅。其相對正賞外。或有隈墻隱映。如嬌饒美婦人半出帷房。作佯羞態度者。此尤可賞。有竹無慮四十餘本。蔥籠蒙密。僅類江南所見。然江南所產。雖其大可圍。其高干雲。其賤如蓬。此直地性使然耳。非所可貴也。夫豈若此竹之整齊行伍。如人削出束立。迫不至侵。離不爲迂。凡皆如意者乎。其餘花草之奇。非止此耳。遲春迺見耳。此不得敍。夫以淸淨心。居淸淨地。是卽神仙也。何必玉京十二樓之要處耶。吾嘗言男兒於世。得宰相難。得而得至致政又難。今公以樞府帶左揆。先期得謝。優遊於此。日與親舊作揮金之樂。是亦人所難得者。噫。可謂明哲保身。樂性君子者歟。僕也蒙見囑以記。敍萬一以備後之標識而已。非好事爲也。時某年某月日。謹記。

두성(斗城)에서 수백 걸음쯤 떨어진 곳에, 땅이 좋은 자리를 끌어당기고 빼어난 기운을 빨아들여 형세가 금잔 모양을 이룬 데가 있다. 거기에 만석(萬石)이라는 골이 있다. 어른들이 서로 전하기를 「돌이 많아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 한다. 나는 말한다. 「아니다. 이 골은 마땅히 녹 팔만 석을 받는 경사가 있으리라 하여 이른 것이지, 반드시 돌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 뒤에 과연 사대부가 많이 와서 집을 지었고, 이제 또 병권을 잡은 추부 상국 박공(朴公)이 와서 살 곳을 잡아 바야흐로 그 집을 새로 지었다. 나와 손님과 벗을 불러 낙성을 하고, 또 그 지은 꾸밈새가 어떠한지 보게 하였다. 내가 보고 말하였다. 「아름답고 다하였다. 더 보탤 것이 없다.」

대개 세상의 넉넉하고 귀한 이들이 집을 지을 때에는 소 만 마리가 끌 만한 재목을 돌려다가 마룻대를 두껍게 하고 기둥을 크게 하니, 씩씩하기는 씩씩하고 사치스럽기는 사치스럽다. 그러나 맑고 시원하여 티끌을 벗어난 뜻은 없다. 이제 공이 지은 것은 이와 다르다. 크고 작음이 알맞아 □하지도 않고 좁지도 않으며, 그 화려하기로는 끝에 이르렀다 할 만하되 그 가운데에 맑고 시원하여 세상 밖을 생각하는 뜻이 있다. 나는 어찌하여 그러한지 알지 못하면서도 그러하니, 이 어찌 공의 마음 솜씨와 눈 솜씨가 이루어 낸 것이 아니겠는가.

무릇 마루 세 칸을 짓고 두 칸을 써서 손 맞는 자리로 삼았다. 그 위는 모두 반자로 메웠으니 우물 정(井) 자 꼴 칸이 모두 열둘이요, 다 붉은 물감과 고운 채색으로 무늬를 놓아 빛깔이 환히 피어나 사람의 눈동자를 빼앗는다. 나에게 이름을 구하기에 마침내 유가(有嘉)라 이름하였다. 대개 이 집에 마땅히 아름다운 경사가 있으리라는 뜻을 딴 것이요, 또 《시(詩)》에 이른바 「나에게 반가운 손님이 있다」는 말을 따서 이 마루를 손님 맞이하는 곳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한 칸을 막아 불당으로 삼고 마음을 가다듬는 곳으로 만들었으니, 부처 모시는 갖춤에 이르기까지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들어가 있으면 마음을 맑게 할 수 있으므로 정려(靜慮)라 이름하였다. 대개 선나(禪那)를 딴 것이니 여기 말로 고요히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 곁의 왼쪽 오른쪽 땅은 씻은 듯 깎은 듯 깨끗하여 사람이 감히 침을 뱉지 못한다. 집을 둘러 빙 돌아가며 모두 국화를 심었는데 꽃이 무릇 열여덟 가지라 흐드러지고 고움이 여느 것과 다르다. 때가 이미 겨울로 접어들었는데 노랑과 하양이 섞여 피어 무르녹게 어우러졌다. 마주 보며 바로 즐기는 것 밖에, 더러 담 모퉁이에 어른어른 비치어 어여쁜 부인이 방에서 반쯤 나와 부끄러운 체하는 모습을 짓는 듯한 것이 있으니 이것이 더욱 즐길 만하다.

대나무가 줄잡아 마흔 그루 남짓인데 푸르게 우거지고 촘촘하여 겨우 강남에서 본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강남에서 나는 것은 그 굵기가 한 아름이 되고 그 높이가 구름에 닿으며 그 흔하기가 쑥대 같으니, 이는 다만 땅의 성질이 그리 만든 것일 뿐 귀하게 여길 바가 아니다. 어찌 이 대나무가 줄을 가지런히 지어 사람이 깎아 내어 묶어 세운 듯, 가까워도 서로 침범하지 않고 떨어져도 에돌지 않아 무릇 다 뜻과 같은 것만 하겠는가. 그 나머지 기이한 꽃과 풀은 이뿐이 아니나 봄을 기다려야 보게 될 것이므로 여기에 적지 못한다.

무릇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맑고 깨끗한 땅에 사니 이것이 곧 신선이다. 어찌 반드시 옥경(玉京) 열두 누각의 요긴한 자리라야 하겠는가. 내가 일찍이 말하였다. 사내가 세상에서 재상이 되기 어렵고, 되고서 벼슬을 내놓기에 이르기가 또 어렵다. 이제 공은 추부로서 좌규(左揆)를 띠고도 때보다 앞서 물러나기를 얻어 여기에서 넉넉히 노닐며, 날마다 옛 벗들과 더불어 돈을 뿌리는 즐거움을 지으니 이 또한 사람이 얻기 어려운 것이다. 아, 밝고 슬기로워 제 몸을 지키고 천성을 즐기는 군자라 이를 만하다.

나는 기문을 맡기심을 입었기에 만분의 하나를 적어 뒷날의 표지가 되게 할 뿐이요, 일 벌이기를 좋아하여 그런 것은 아니다. 때는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 삼가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