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후집 권11

공공 상인의 토각암 기空空上人兔角庵記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73자 · 낭독 2.5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瑜伽大士景照。字空空。其遊刃空門。已可謂法王。而又餘事工於詩。故世或以詩僧稱之。宋朝禪老祖播聞其名。遙贐以斑竹杖一事,烏漆鉢五器,黃赤文木槵子一串。兼以詩寄之。又名所居曰兔角庵。自書其額以寄之。予嘉二師千里相契之意。旣和播師詩。略言大槩。師又以記其庵爲請。再三來扣。然予未知所以名之之意。久有難色。今方以予妄意度之。豈以子之字空空。而以空無兔角對之而名之耶。然則空空兔角。其義雖一。兔角又深於空空。而以空空歸於兔角。是則頑空執空之類。非子之所宗唯心唯識入圓成實者也。予復思之。是意不然。名之景照。而字曰空空。則如楞嚴所謂淨極光通達。寂照含虛空者是已。由是觀之。以兔角空空。麗之於照。是豈頑空哉。必以此而名之也。外此予亦無所言已。

유가(瑜伽)의 큰 어른(大士) 경조(景照)는 자가 공공(空空)이다. 그가 불문에서 막힘 없이 노닒이 이미 법왕이라 할 만하고, 또 남은 일로 시에 솜씨가 뛰어나므로 세상에서 더러 시승(詩僧)이라 일컫는다.

송나라 조정의 선승 조파(祖播)가 그 이름을 듣고, 멀리서 얼룩대 지팡이 한 자루와 검은 옻칠한 바리때 다섯 벌과 누렇고 붉은 무늬 나무로 만든 염주 한 꿰미를 선물로 보내고 아울러 시를 부쳐 왔다. 또 그 사는 곳을 토각암(兔角庵)이라 이름하고 스스로 그 현판을 써서 보냈다.

내가 두 스님이 천 리에서 서로 마음이 맞은 뜻을 아름답게 여겨 이미 조파 스님의 시에 화답하며 그 대강을 대략 말하였다. 스님이 또 그 암자의 기문을 청하여 두세 번 와서 두드렸으나, 나는 그렇게 이름한 뜻을 알지 못하여 오래도록 난색을 지었다.

이제 바야흐로 내 멋대로 헤아려 보니, 어찌 그대의 자가 공공이라 하여 토끼 뿔이 없는 공(空)으로 맞세워 이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공공과 토각이 그 뜻은 비록 하나이나 토각이 공공보다 더 깊으니, 공공을 토각으로 돌린다면 이는 곧 완고한 공이요 공에 집착하는 무리라, 그대가 으뜸으로 삼는 오직 마음이요 오직 앎이라 하여 원성실(圓成實)에 드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다시 생각하니 이 뜻은 그렇지 않다. 이름을 경조라 하고 자를 공공이라 하였으니, 《능엄경(楞嚴經)》에 이른바 「깨끗함이 지극하면 빛이 두루 통하고 고요히 비추어 허공을 머금는다」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로 보건대 토각과 공공을 비춤에 붙였으니 이것이 어찌 완고한 공이겠는가. 반드시 이로써 이름한 것이다. 이 밖에는 나도 할 말이 없다.

협주 1

遊刃 — 『장자』의 포정(庖丁)이 칼을 뼈 사이로 막힘 없이 놀렸다는 말에서 왔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