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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의 국화 시를 논하다王文公菊詩議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13자 · 낭독 2.1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予按西淸詩話。載王文公詩曰。黃昏風雨暝園林。殘菊飄零滿地金。歐陽脩見之曰。凡百花皆落。獨菊枝上黏枯耳。何言落也。永叔之言。亦不爲大非。文公大怒曰。是不知楚辭云夕飡秋菊之落英。歐陽九不學之過也。予論之曰。詩者。興所見也。予昔於大風疾雨中。見黃菊亦有飄零者。文公詩旣幸云黃昏風雨暝園林。則以興所見。拒歐公之言可也。強引楚辭則其曰。歐陽某何不見此。亦足矣。乃反以不學。一何褊歟。脩若未至博學洽聞者。楚詞豈幽經僻說。而脩不得見之耶。況脩一代名儒也。而以不學目之。又何大甚也。予於介甫。不可以長者期之也。

내가 《서청시화(西淸詩話)》를 보니 왕안석(王安石)의 시를 실어 이르기를 「저물녘 비바람에 동산 숲이 어둡더니 / 시든 국화 흩날려 떨어져 땅에 가득 금빛일세」 하였다. 구양수(歐陽脩)가 이를 보고 말하기를 「무릇 온갖 꽃은 다 지지만 국화만은 가지 위에 붙은 채로 마를 뿐이니 어찌 진다고 말하는가」 하였다. 구양수의 말도 크게 그른 것은 아니다.

왕안석이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이는 《초사(楚辭)》에 「저녁에 가을 국화의 진 꽃을 먹는다」 한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니, 구양수가 배우지 않은 허물이다」 하였다.

내가 이를 논한다. 시란 본 바에 흥을 일으키는 것이다. 내가 옛적에 큰바람과 모진 비 가운데에서 누런 국화가 또한 흩날려 지는 것을 보았다. 왕안석의 시가 이미 「저물녘 비바람에 동산 숲이 어둡다」 하였으니 본 바에 흥을 일으켰다 하여 구양수의 말을 막는 것이 옳다. 억지로 《초사》를 끌어댈 양이면 「구양 아무개가 어찌 이를 보지 못하였는가」라고만 하여도 넉넉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도리어 배우지 않았다 하였으니 어찌 그리 속이 좁은가.

구양수가 만약 널리 배우고 두루 들은 이에 이르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초사》가 어찌 그윽한 경서나 외진 이야기이기에 구양수가 보지 못하였겠는가. 하물며 구양수는 한 시대의 이름난 선비인데 배우지 않았다고 지목하였으니 또 어찌 그리 심한가. 나는 왕안석을 어른으로 기대할 수 없다.

협주 1

저본은 구양수(歐陽脩)를 영숙(永叔, 그의 자)·구양구(歐陽九)·구공으로도, 왕안석(王安石)을 왕 문공(王文公, 그의 시호)·문공·개보(介甫, 그의 자)로도 적었으나 각각 한 사람이므로 한 이름으로 모았다. ―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