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보의 시를 논하다李山甫詩議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1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詩話。又載李山甫覽漢史詩曰。王莽弄來曾半沒。曺公將去便平沈。予意謂之此佳句也。有高英秀者譏之曰。是破船詩也。予意以爲凡詩有言物之體者。有不言其體而直言其用者。山甫之寓意。殆必以漢爲之船。而直言其用曰。半沒平沈也。若其時山甫在而言曰。子以吾詩爲破船詩。然也。予以漢擬之船而言之也。而善乎子之能知也。則爲英秀者。其何辭以答之耶。詩話亦以英秀爲惡喙薄徒。則未必用其言也。但詩話不及是議。予所未知也。
시화에 또 이산보(李山甫)가 한나라 역사를 보고 지은 시를 실어 이르기를 「왕망(王莽)이 나라를 농락한 뒤로 이미 반쯤 잠기더니 / 조공(曺公)이 쥐고 가매 곧 평평히 가라앉았네」 하였다. 내 뜻에는 이것이 좋은 구절이라 여긴다.
고영수(高英秀)라는 이가 이를 비웃어 말하기를 「이는 부서진 배의 시다」 하였다. 내 뜻에는 이러하다. 무릇 시에는 사물의 바탕을 말하는 것이 있고, 그 바탕을 말하지 않고 바로 그 쓰임을 말하는 것이 있다. 이산보가 뜻을 붙인 것은 아마도 한나라를 배로 삼고 바로 그 쓰임을 말하여 반쯤 잠기고 평평히 가라앉았다 한 것이리라.
만약 그때 이산보가 있어 말하기를 「그대가 내 시를 부서진 배의 시라 하니 그렇다. 내가 한나라를 배에 견주어 말한 것이다. 그대가 능히 알아보니 훌륭하다」 하였더라면, 고영수 된 자가 무슨 말로 답하였겠는가. 시화도 또한 고영수를 입이 사나운 경박한 무리라 하였으니 반드시 그 말을 쓸 것은 아니다. 다만 시화가 이 논의에 미치지 못하였으니 내가 알지 못할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