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후집 권12

송광사를 맡으신 선사 몽여에게 부치는 글寄松廣社主禪師夢如手書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150자 · 낭독 1.5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2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右啓。僕曩以塵雜細故。達于頤知識者。頤老特一鉢浮屠耳。予安有所冀而乃爾耶。以顔厚不得逕達於大和尙丈下。庶或藉其舌。略聞于左右耳。書生之大寡廉恥如此。果蒙頤老手簡。其所送物件。大過始望。雖於其簡以自送爲辭。知必出於大和尙方丈。祗領已還。不勝感荷。不然。儒家之經費。比來頗甚繁浩。殆不得堪支也。噫。非救世大法王。疇及是哉。書意未悉。惶恐惶恐。惟冀爲法珍重。

위와 같이 아룁니다. 제가 지난번 티끌 같고 자잘한 일로 이(頤) 선지식(善知識)에게 이르렀습니다. 이 노인은 다만 바리때 하나 지닌 중일 뿐이니 제가 어찌 바랄 것이 있어 그리하였겠습니까. 낯 두꺼운 짓이라 큰스님 앞에 곧바로 이를 수 없었으므로, 행여 그 혀를 빌려 대략 좌우에 들리게 하고자 하였을 뿐입니다. 글하는 선비가 낯 두껍고 부끄러움을 모름이 이와 같습니다.

과연 이 노인의 짧은 글월을 받았는데 그 보내온 물건이 처음 바라던 것보다 크게 지나쳤습니다. 비록 그 글월에서는 자기가 스스로 보내는 것이라 말하였으나 반드시 큰 화상 방장에게서 나온 줄을 압니다. 삼가 받고 물러나니 고마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유가(儒家)의 드는 비용이 요즈음 자못 매우 많아 거의 견디지 못할 뻔하였습니다.

아, 세상을 건지는 큰 법왕이 아니면 누가 여기에 미치겠습니까. 글 뜻을 다 펴지 못합니다. 두렵고 두렵습니다. 오직 법을 위하여 몸을 아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