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후집 권12

이 시랑 수에게 보내는 글與李侍郞需書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439자 · 낭독 4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2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月日。某頓首李君足下。昨蒙所貺集序。奉戴欣感。夫所謂集序者。一集之先驅也。引而伸之。導作者之蘊。爲之標的者也。古之人所以有集而不可無序者。蓋亦以此耳。兒子涵旣收拾予詩文。緝成全集。因問之曰。集已成。宜有以序。而冠之者誰當之。予以夫子應之曰。知吾心知吾詩者。獨李君某耳。捨玆誰可。涵方以此微逮。而尋蒙落玉唾珠。已光于編首矣。觀其文彩曄然。辭旨精緻。足以潤色我文字。飛揚我名聲。侈乎非淺薄所敢當也。昔李陽氷。是李白之從叔也。李漢。乃韓愈之子壻也。其於集序。皆不得無嫌者也。然李白韓愈。天下之雄才也。則雖抗白以千載獨步。躋韓以周情孔思。世不爲嫌。而猶以爲歉也。吾子之於僕。無嫌者也。若以公而敍之。則如僕之詩文。宜抑而不可抗。宜斥而不可躋者也。然爲人作序。而反抑且斥。萬無此理。則爲子計者。第言集之所作因由本末。亦足矣。胡奈以溢美之辭。抗之躋之。畫無鹽飾嫫母。欲使僕齊驅於太白退之之駕。則得不爲大濫乎。人不得無疑矣。噫。陽氷李漢。以親也而竟不落世之嫌者。以能公於親故也。吾子以疏也。而似未免乎人之疑者。以其私於疏故爾。僕之厚累吾子如此。尙何言哉。雖然。萬一吾詩文。以序故傳之不朽。亦榮也。敢不深銘。自得序。緣久痾。不以時奉謝。惶恐。再拜謹白。

어느 달 어느 날, 아무개는 머리를 조아려 이군 족하께 올립니다.

어제 내려 주신 문집 서문을 받자와 받들고 기뻐하며 감격하였습니다. 무릇 이른바 문집의 서문이란 한 문집의 길잡이입니다. 끌어 펴서 지은이의 쌓인 바를 이끌어 내어 그 표적이 되는 것이니, 옛사람이 문집이 있으면 서문이 없을 수 없다 한 까닭도 대개 이 때문일 뿐입니다.

아들 함(涵)이 제 시와 글을 거두어 모아 온 문집을 엮고서 묻기를 「문집이 이미 되었으니 마땅히 서문이 있어 앞에 얹을 이가 누구이겠습니까」 하기에, 제가 그대를 들어 답하여 「내 마음을 알고 내 시를 아는 이는 오직 이군 아무개뿐이니 이를 두고 누가 옳겠는가」 하였습니다. 함이 바야흐로 이로써 넌지시 미치자 이윽고 옥 같은 침과 구슬을 떨어뜨려 주시어 이미 책머리를 빛내 주셨습니다.

그 글의 빛깔이 환하고 말뜻이 정하고 촘촘함을 보니 제 글을 빛내고 제 이름을 날리기에 넉넉하나, 지나치게 커서 얕고 엷은 제가 감히 감당할 바가 아닙니다.

옛적에 이양빙(李陽氷)은 이백(李白)의 종숙이요 이한(李漢)은 한유(韓愈)의 사위였습니다. 그들이 문집 서문을 씀에 다 혐의가 없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백과 한유는 천하의 큰 재주이니, 비록 이백을 천 년에 홀로 걷는다 하여 들고 한유를 주공의 정과 공자의 생각에 오른다 하여 올려도 세상이 혐의로 삼지 않았고 오히려 모자라다 하였습니다.

그대는 저와 혐의가 없는 사이입니다. 만약 공변되이 서술하였다면 저 같은 이의 시와 글은 마땅히 눌러야지 들어서는 안 되고 마땅히 물리쳐야지 올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위하여 서문을 지으면서 도리어 누르고 또 물리치는 법은 만에 하나도 없으니, 그대를 위한 계책으로는 다만 문집을 짓게 된 까닭의 처음과 끝만 말하여도 넉넉하였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지나치게 기리는 말로 들고 올려, 무염(無鹽)을 그리고 모모(嫫母)를 꾸며 저로 하여금 태백과 퇴지의 수레와 나란히 달리게 하려 하십니까. 크게 넘침이 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 이양빙과 이한은 가까운 사이이면서도 마침내 세상의 혐의에 떨어지지 않은 것은 가까운 이에게 공변될 수 있었기 때문이요, 그대는 먼 사이이면서도 남의 의심을 면하지 못할 듯한 것은 먼 이에게 사사로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대에게 두터이 누를 끼침이 이와 같으니 오히려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비록 그러하나 만에 하나라도 제 시와 글이 서문 덕분에 썩지 않고 전한다면 또한 영광입니다. 감히 깊이 새기지 않겠습니까. 서문을 받은 뒤로 오랜 병 때문에 때맞추어 사례를 올리지 못하였으니 두렵습니다. 두 번 절하고 삼가 아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