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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이 주역을 태우지 않은 일을 논하다秦始皇不焚周易論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1 · 한자 290자 · 낭독 2.6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2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傳有秦始皇欲愚天下黔首。坑儒生焚詩書。而以周易爲卜筮之書。獨不焚之。予以爲此天之意也。非秦皇之意也。何以言之。秦皇旣欲愚黔首。而焚詩書坑儒士。則五經莫智莫神於羲易也。豈獨置此書。乃反神其人智其民耶。若要其卜筮。則卜筮者。惟深於易者。然後能之也。深於易則儒之流也。然則向之坑儒之意左矣。若存其人而亡其書。則他經亦爾。然則向之焚詩書之意戾矣。且天生神物曰蓍龜。申之以河圖洛書。繼之以聖人。聖人受命而生。演八卦定乾坤。以通神明之德。於是乎有易焉。經不云乾坤成則易立乎其中。易不可見則乾坤幾乎息矣。由此觀之。易者。生於天者也。天欲廢之。則如勿生。苟不廢焉。則寧不勝一秦皇而使焚之。於以滅天地之道耶。予是以。曰是天之意。非秦皇之意也。不然。與他書同矣。烏在爲神明之書。天地之用歟。

전하는 말에, 진시황(秦始皇)이 천하의 백성을 어리석게 하려고 유생을 묻고 시(詩)와 서(書)를 불사르면서도 주역(周易)은 점치는 책이라 하여 홀로 태우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이것이 하늘의 뜻이지 진시황의 뜻은 아니라고 여긴다.

무엇으로 그렇게 말하는가. 진시황이 이미 백성을 어리석게 하려고 시와 서를 불사르고 유생을 묻었다면, 오경 가운데 복희의 역(易)보다 더 지혜롭고 더 신묘한 것이 없다. 어찌 홀로 이 책만을 남겨 두어 도리어 그 사람을 신묘하게 하고 그 백성을 지혜롭게 하겠는가.

만약 점치는 일이 필요하였다면, 점이란 오직 역에 깊은 이라야 할 수 있다. 역에 깊으면 곧 유자의 무리다. 그렇다면 앞서 유생을 묻은 뜻이 어그러진다. 만약 그 사람은 남기고 그 책만 없앤다면 다른 경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앞서 시와 서를 불사른 뜻이 어긋난다.

또 하늘이 신령한 물건을 내니 시초와 거북이요, 이를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로 거듭하고 성인으로 이었다. 성인이 명을 받아 나서 여덟 괘를 펴고 건(乾)과 곤(坤)을 정하여 신명의 덕에 통하니, 이에 역이 있게 되었다. 경에 이르지 않았는가. 「하늘과 땅이 이루어지면 역이 그 가운데 서고, 역을 볼 수 없으면 하늘과 땅이 거의 그친다」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역이란 하늘에서 난 것이다. 하늘이 이를 폐하려 하였다면 아예 내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로 폐하지 않을 것이라면, 어찌 한 진시황을 이기지 못하여 그로 하여금 불사르게 하고 그로써 하늘과 땅의 도를 멸하게 하겠는가.

나는 이 때문에 이것이 하늘의 뜻이지 진시황의 뜻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책과 같았을 것이니, 신명의 책이요 하늘과 땅의 쓰임이 되는 자리가 어디에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