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역사에서 간하는 신하를 죽인 일을 논하다唐史殺諫臣論
予見唐紀拾遺侯昌業以僖宗不親政事。專務遊戲。上疏極諫。帝殺之。又補闕常濬上書諫藩鎭大甚。猶未之窹。宜振典刑。以威四方。上怒又殺之。二臣之言。可謂切直。而其不從亦足矣。殺之何甚。其前後君之殺諫臣。往往多有。今適見僖宗紀。故此獨擧耳。且桀紂之殺諫臣也。暴其惡於百世之下。凡有口者無有不深譏顯刺者。後之君之殺諫臣。雖載之書史。鮮有暴露其虐如桀紂者。予未知其故。夫熊虎之咥人。人不以爲怪。而餘則人皆甚以爲異也。以此觀之。無道之君之殺諫臣。不足爲怪也。若其惡不至如桀紂者。則是可怪已。僖宗。唐季之主也。力弱權微。雖欲如桀紂之惡。不可得也。而猶殺諫臣。原其狀。不曰異乎。噫。漢光武之於韓韶。惡其言切直。旣放歸田里。又追責逼殺。又何甚耶。古今多以光武爲聖。名聖尙爾。餘何足言哉。司馬光以爲仁明之累而不大言者。豈以聖而諱之耶。予謂惡莫大於殺諫臣。其惡可掩大德。而何謂聖乎。謂之賢君。亦足矣。
내가 당나라 기록을 보니, 습유 후창업(侯昌業)이 희종(僖宗)께서 정사를 몸소 보지 않고 오로지 놀이에만 힘쓴다 하여 글을 올려 지극히 간하자 황제가 그를 죽였다. 또 보궐 상준(常濬)이 글을 올려 「번진(藩鎭)이 너무 심한데도 아직 깨닫지 못하시니 마땅히 법에 정한 형벌을 떨쳐 사방에 위엄을 보이소서」 하고 간하니, 임금이 노하여 또 그를 죽였다.
두 신하의 말은 간절하고 곧다 할 만하다. 그 말을 따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족하거늘 죽인 것은 어찌 그리 심한가. 앞뒤로 임금이 간하는 신하를 죽인 일이 왕왕 많이 있으나, 이제 마침 희종의 기록을 보았으므로 이것만을 든 것이다.
또 걸(桀)과 주(紂)가 간하는 신하를 죽인 일은 그 악이 백세 뒤까지 드러나, 무릇 입을 가진 이라면 깊이 나무라고 드러내어 꾸짖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런데 뒷 시대 임금이 간하는 신하를 죽인 일은 비록 글과 역사에 실렸더라도 그 사나움을 걸과 주처럼 드러낸 것이 드무니,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무릇 곰과 범이 사람을 무는 것은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기지 않으나 그 밖의 짐승이 그리하면 사람들이 다 매우 이상하게 여긴다. 이로 보건대 도 없는 임금이 간하는 신하를 죽이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고, 그 악이 걸과 주에까지 이르지 않는 이가 그리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괴이한 일이다. 희종은 당나라 말년의 임금이다. 힘이 약하고 권세가 미미하여 비록 걸과 주 같은 악을 하고자 하여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간하는 신하를 죽였으니 그 실상을 캐어 보면 이상하다 하지 않겠는가.
아. 한나라 광무제(光武帝)는 한흠(韓歆)에 대하여 그 말이 간절하고 곧은 것을 미워하여, 이미 시골로 내쫓고서도 또 뒤쫓아 꾸짖어 다그쳐 죽였으니 또한 어찌 그리 심한가. 예나 이제나 광무제를 성스럽다 여기는 이가 많다. 성스럽다 이름난 이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나머지야 무엇을 말할 것이 있겠는가. 사마광(司馬光)이 이를 어질고 밝음에 누가 된다고만 하고 크게 말하지 않은 것은, 어찌 성스럽다 하여 꺼린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악은 간하는 신하를 죽이는 것보다 큰 것이 없고 그 악은 큰 덕을 가릴 만하니 어찌 성스럽다 하겠는가. 어진 임금이라 이르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협주 1
저본은 「韓韶」이나 「韓歆」의 잘못으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