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동국이상국집 › 후집 권12

고 조의대부 사재경 우간의대부 보문각 직학사 지제고로 자금어대를 받은 이군의 묘지명故朝議大夫司宰卿右諫議大夫寶文閣直學士知制誥賜紫金魚袋李君墓誌銘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 이규보(李奎報) · 1241년 (고려 고종 28) 엮음 · 1251년 고쳐 보탬 · 단락 2 · 한자 913자 · 낭독 8.9분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2 고려 이규보가 평생 지은 글을 아들 이함이 1241년에 엮어 새기고, 손자 이익배가 1251년에 고쳐 보탠 문집. 시와 부, 임금께 올린 표와 전, 절과 탑에 붙인 기, 비명과 묘지명, 편지와 서문, 그리고 몽골이 쳐들어온 때에 오간 국서까지 담겼다. 고구려 시조를 노래한 「동명왕편」이 전집 권3에 있고, 술과 거문고와 시를 벗 삼아 스스로 백운거사라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후집에 남아 있다. 책은 그가 눈을 앓다 붓을 놓는 마지막 시와, 그가 죽은 뒤 남이 지어 붙인 뇌서·묘지명으로 닫힌다.

君諱世華。字居實。系出眞州。考諱某。檢校大將軍。母海陽郡夫人金氏。某官諱某之女也。君方妙齡。父雖將官。知其性穎悟必自達。早令從學。由是力學工屬文。越戊午春。赴成均試中之。至壬戌。擧春場擢丙第。貞廟朝。籍茶房。俄以公事免。後復籍內侍。會康廟崩。隨例見免。君不經外寄得祿仕。除見州監牧。丙子歲。遷補都兵馬錄事。丁丑秋。出爲定戎分道。爲元帥趙公所器。及見替。公表留幕下。委以事甚重之。公還朝力薦。除大盈置承。庚辰春。出爲白翎鎭將。理邑廉平。此郡舊無鄕校。君首創之。集吏人子弟敎以學。不數年。皆得成其才。至有應貢擧者。一郡慕之。屢騰狀褒美。秩滿。除神虎衛錄事。俄復兼都兵馬。因累歷內園署令祕書郞。甲申夏。遷中書注書。其冬。拜右正言知制誥。俄遷殿中侍御史。賜緋魚袋。未幾遷右司諫知制誥。丁亥春。出守南原府。明年。移守東州。又以理最聞。庚寅春。以侍御史金紫見詔。明年秋。出按慶尙州道。會蒙古大寇邊。五道廉按使皆領兵赴援。君促理兵。先諸道赴期。又持軍如宿將。聞者韙之。壬辰。除拜禮賓少卿御史雜端。是夏。國家因虜寇將遷都。以廣州迺中道巨鎭。朝論揀汰。遣公出刺。冬十一月。蒙古大兵來圍數十重。以百計攻之至數月。公日夜繕守備。隨機應變。出其意表。或俘殺甚衆。虜知不可。遂解圍去。州當南路要會。此城陷則餘可知已。微君幾殆矣。昔張巡之守睢陽也。雖義烈有足嘉者。猶未免身死城陷矣。君能守之以死。而廻之生地。卒得身保城完。全活萬人。則功烈可謂優矣。時皆以爲亟被寵見喚。而猶留三年者。朝議豈以公有守禦之能。而重易其人耶。乙未冬。以朝散大夫禮部侍郞右諫議大夫寶文閣直學士知制誥徵還。蓋賞功也。俄遷吏部侍郞。仍諫議。丁酉夏。又出鎭淸州山城。公旣閑於守禦。蒙兵竟不敢犯。冬。拜朝議大夫司宰卿。仍諫議。戊戌仲秋望。在家召子壻等。翫月飮酒。從容甚樂。方擧杯忽仆不起。至曙而逝。嗚呼異哉。何其大速也如此。公爲人偉儀表。資沈遂確實。旣以文鳴世。又吏幹虎略。皆所游刃。是可謂全才者。然未相而卒。玆非命歟。先娶禮賓少卿許京女。卒。再醮興威衛將軍薛某女。凡生男三人女六人。男曰守眞。南原府通判。曰守年。安慶府錄事。曰守深。未冠。女一適堂後官柳卿老。次適某官。次適某官某。三女尙幼。其葬也。子守年壻卿老等具行狀。求予爲銘。圖有以不朽者。予亦嘗與君有舊。理難可辭。遂銘之曰。

군의 휘는 세화(世華)요 자는 거실(居實)이며 계통은 진주(眞州)에서 나왔다. 아버지의 휘는 아무개로 검교대장군이었고, 어머니는 해양군부인 김씨로 아무 벼슬 아무개의 딸이다.

군이 한창 어릴 때에 아버지가 비록 무관이었으나 그 성품이 빼어나고 슬기로워 반드시 스스로 이룰 줄을 알고 일찍 배움을 따르게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힘써 배우고 글 짓기를 잘하였다. 무오년 봄에 성균시에 나아가 붙었고, 임술년에 이르러 봄 과거에 나아가 병과에 뽑혔다.

정묘(貞廟)의 조정에서 다방(茶房)에 적을 두었다가 이윽고 공무의 일로 면직되었다. 뒤에 다시 내시원(內侍院)에 적을 두었는데 마침 강묘(康廟)가 돌아가시매 전례를 따라 면직되었다. 군은 바깥 고을을 거치지 않고 녹을 받는 벼슬을 얻어 견주(見州) 감목에 임명되었다. 병자년에 도병마 녹사로 옮겨 보임되었고, 정축년 가을에 나가 정융(定戎)의 분도가 되었는데 원수 조공(趙公)이 그릇으로 여겼다. 갈릴 때가 되자 공이 글을 올려 막하에 머물게 하고 일을 맡겨 매우 중히 여겼다. 공이 조정에 돌아와 힘써 천거하니 대영(大盈)의 승에 임명되었다.

경진년 봄에 나가 백령진(白翎鎭)의 진장이 되었는데 고을 다스림이 청렴하고 공평하였다. 이 고을에는 예로부터 향교가 없었는데 군이 처음으로 세워 아전들의 자제를 모아 배움을 가르쳤다. 몇 해 되지 않아 다 그 재주를 이루어 과거에 응하는 이까지 있게 되니, 온 고을이 그를 사모하여 여러 번 글을 올려 기렸다.

임기가 차자 신호위 녹사에 임명되었고 이윽고 다시 도병마를 겸하였다. 인하여 여러 번 내원서 영과 비서랑을 거쳤다. 갑신년 여름에 중서주서로 옮기고 그해 겨울에 우정언 지제고에 임명되었으며, 이윽고 전중시어사로 옮겨 비어대를 받았다. 얼마 되지 않아 우사간 지제고로 옮겼다. 정해년 봄에 나가 남원부를 맡았고 이듬해 동주(東州)로 옮겨 맡았는데, 또 다스림이 으뜸이라고 이름이 났다.

경인년 봄에 시어사로서 금자(金紫)를 띠고 조서로 부름을 받았다. 이듬해 가을에 나가 경상주도를 안찰하였다. 마침 몽고가 크게 변방을 노략질하매 다섯 도의 안찰사가 다 군사를 거느리고 구원하러 나아갔다. 군은 군사를 재촉해 정돈하여 여러 도보다 먼저 기일에 다다랐고, 또 군사 거느리기를 노련한 장수처럼 하니 듣는 이가 옳게 여겼다.

임진년에 예빈소경 어사잡단에 임명되었다. 그해 여름에 나라가 오랑캐의 노략질 때문에 도읍을 옮기려 하였는데, 광주(廣州)가 곧 가운뎃길의 큰 진이므로 조정의 의논이 사람을 가려 뽑아 공을 보내어 나가 다스리게 하였다.

겨울 십일월에 몽고의 큰 군사가 와서 수십 겹으로 에워싸고 온갖 꾀로 여러 달을 두고 쳤다. 공이 밤낮으로 지킬 채비를 다듬고 그때그때 형세를 따라 맞서 적의 예상 밖으로 나가니, 사로잡고 죽인 것이 매우 많았다. 오랑캐가 안 될 줄을 알고 마침내 에움을 풀고 갔다.

이 고을은 남쪽 길의 요충에 해당하니 이 성이 무너졌다면 나머지는 알 만하다. 군이 아니었다면 거의 위태로웠을 것이다. 옛날 장순(張巡)이 수양(睢陽)을 지킨 것은 비록 의롭고 굳센 절개가 기릴 만하나 오히려 몸이 죽고 성이 무너짐을 면하지 못하였다. 군은 죽기로 지키면서도 이를 살 땅으로 돌려 마침내 몸을 보전하고 성을 온전히 하여 만 사람을 다 살렸으니, 공적이 넉넉하다 할 만하다. 그때 사람들이 다 곧 총애를 입어 불려 오리라 여겼으나 오히려 세 해를 머물렀으니, 조정의 의논이 어찌 공에게 지켜 막는 재능이 있다 하여 그 사람 바꾸기를 어렵게 여긴 것이 아니겠는가.

을미년 겨울에 조산대부 예부시랑 우간의대부 보문각 직학사 지제고로 불러 돌아오게 하였으니 대개 공을 상 준 것이다. 이윽고 이부시랑으로 옮기고 간의는 그대로 두었다. 정유년 여름에 또 나가 청주(淸州) 산성을 지켰다. 공이 이미 지켜 막는 일에 익숙하므로 몽고 군사가 끝내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겨울에 조의대부 사재경에 임명되고 간의는 그대로였다.

무술년 한가위 보름에 집에서 아들과 사위들을 불러 달을 즐기며 술을 마셨는데 조용하고 매우 즐거웠다. 막 잔을 들다가 홀연히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새벽에 이르러 세상을 떠났다. 아, 이상하다. 어찌 그리도 빠른가.

공의 사람됨은 거동이 훤칠하고 바탕이 가라앉고 굳으며 참되었다. 이미 글로 세상에 울렸고 또 관리로서의 수완과 범 같은 지략이 다 칼날을 놀리듯 하였으니, 이야말로 온전한 재주라 할 만하다. 그러나 재상에 이르지 못하고 죽었으니 이것이 명이 아니겠는가.

먼저 예빈소경 허경(許京)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죽었고, 다시 흥위위 장군 설(薛) 아무개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모두 아들 셋과 딸 여섯을 낳았다. 아들 수진(守眞)은 남원부 통판이요, 수년(守年)은 안경부 녹사요, 수심(守深)은 아직 관례를 하지 않았다. 딸 하나는 당후관 유경로(柳卿老)에게 시집갔고 다음은 아무 벼슬에게, 다음은 아무 벼슬 아무개에게 시집갔으며, 세 딸은 아직 어리다.

장사 지낼 때에 아들 수년과 사위 경로 등이 행장을 갖추어 내게 명(銘) 지어 주기를 구하니, 썩지 않게 하려 꾀한 것이다. 나도 일찍이 군과 옛 정분이 있어 이치로 보아 사양하기 어려웠다. 마침내 명을 지어 이른다.

협주 1

幷序

서를 아우른다.

南紀曰廣。衝要是扼。帝所倚重。如護全國。時惟我公。出作方伯。方虜之圍。寄命不測。能以氣壓。談笑却敵。橫身濟難。顯烈如此。全活萬人。陰德若彼。物論僉騰。期以三事。計級而升。亦跬步耳。天不少借。奄若朝露。糾纏紛軋。孰詰其故。爛然功名。暉映千古。刻銘區區。大鵬一羽。

남쪽을 버티는 벼리를 광주라 하니 요충을 이곳에서 막는다 임금이 기대어 무겁게 여기심이 온 나라를 지키는 것과 같았네 그때 오직 우리 공이 나가 한 지방의 어른이 되었네 오랑캐가 에워쌀 때에 목숨을 헤아릴 수 없는 데 맡겼네 기운으로 눌러 말하고 웃으며 적을 물리쳤네 몸을 던져 어려움을 건졌으니 드러난 공적이 이와 같았네 만 사람을 다 살렸으니 남몰래 쌓은 덕이 저와 같았네 뭇사람의 말이 다 드높아 삼공의 자리를 기약하였네 품계를 헤아려 오르는 것쯤은 또한 반걸음일 뿐이었네 하늘이 조금도 빌려주지 않아 문득 아침 이슬과 같았네 얽히고 뒤엉켜 어지러이 삐걱이니 누가 그 까닭을 따져 묻겠는가 눈부신 공과 이름은 천고에 빛을 비추리 새긴 명이 구구하니 큰 붕새의 깃 하나일 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