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공을 애도하는 글誄書
維歲在辛丑秋九月二日。守大保門下侍郞平章事李公病卒。仍殯于私第。越十一月六日庚寅。葬于鎭江山東麓。禮也。公諱奎報。字春卿。黃驪縣人也。考諱允綏。官至戶部郞中。母金氏。金壤縣人。公之始生。乳嫗一日抱出門。有一老父過曰。此兒。千金之子。宜善護養。嫗走白嚴君。君疑其神人。使人追之不見焉。公幼聰敏穎悟。九歲。能屬文。時號奇童。九經史百子。一覽輒記。以詩捷稱。牛童馬走。無不知名也。己酉。擧司馬試中第一。明年庚戌。擢進士第。俄補全州書記。爲政剛猛。因同寮忌憚被讒。上洛。壬戌。東都叛。朝廷出三軍征之。戎幕以散官及第充修製。歷三人。皆以計避之。公獨曰。爲人臣避國難可乎。遂從軍。丁卯。被儒官所薦。補直翰林院。以文敏累遷。乙亥直除右正言知制誥。己卯。因公事被劾。出爲桂陽都護府副使。不涉一年。以禮部郞中起居注見召。未幾。除寶文閣待制。待制之任。非凡材所當。故時或有缺焉。積官至樞密院副使左散騎常侍翰林學士承旨。嗣子涵爲直翰林。故改爲寶文閣學士。尋拜政堂文學參知政事。公以年耄告老。上不允。丁酉。又表乞退固切。以金紫光祿大夫守大保門下侍郞平章事修文殿大學士監修國史判禮部事翰林院事太子大保致仕。公爲人。寬雅正直大臣也。時人目之曰。人中龍也。不獨窮究經史。至於幽文僻說佛書道帙。無不遍閱。晚年尤信佛法。常誦楞嚴。又嗜讀洗心經。窮大衍之數。公一掌成均。三典禮闈。所得皆當世聞人。玉筍之盛。無若此者。自典誥至于卿相。凡國家王言帝誥高文大冊。皆出一手。雖及懸車。外國交聘表狀徵誥文字。亦公之所製也。由是眷遇益重。每頒月俸。與在官相府同焉。又命有司取公所著前後文集五十三卷。募工彫印傳于世。則名振華夷。寵無前古。哀榮終始。可謂無缺矣。公始諱仁底。將赴司馬試。夢奎星報異瑞。因改焉。果中第一。方未冠時。有吳先生世才者。於人愼許可。一見而奇之曰。子非常人也。必遠到矣。及登第。公嫌其科劣。醉謂賀客曰。科第雖下。豈不是三四度鑄門生者乎。座客大笑。於戲。奎星之報。吳公之知。公之醉語。豈不異哉。解位家居。常以詩酒自娛。及辛丑七月。得微恙。至九月二日。向西着衣。翛然而化。享年七十四。上聞訃震悼。勑有司庀喪事。三日不視朝。贈諡曰文順公。仍命邇臣誄以發之。其詞曰。
신축년 가을 구월 초이틀에 수태보 문하시랑 평장사 이공(李公)이 병으로 돌아가시니 이어 사삿집에 빈소를 차렸다. 십일월 초엿새 경인일에 진강산(鎭江山) 동쪽 기슭에 장사 지내니 예에 맞는 일이었다.
공의 휘는 규보(奎報)요 자는 춘경(春卿)이며 황려현(黃驪縣) 사람이다. 아버지의 휘는 윤수(允綏)로 벼슬이 호부낭중에 이르렀고, 어머니는 김씨로 금양현(金壤縣) 사람이다.
공이 처음 났을 때 젖어미가 하루는 안고 문을 나섰는데 한 늙은이가 지나가며 말하였다. 「이 아이는 천금같이 귀한 아들이니 마땅히 잘 보살펴 기르라.」 젖어미가 달려가 아버지께 아뢰니 아버지가 신인(神人)인가 의심하여 사람을 시켜 뒤쫓게 하였으나 보이지 않았다.
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민첩하며 슬기로웠다. 아홉 살에 글을 지을 줄 알아 그때 사람들이 기이한 아이라 불렀다. 아홉 경전과 역사와 여러 제자의 글을 한 번 보면 문득 기억하였고 시가 빠르기로 일컬어져, 소 먹이는 아이와 말 모는 종까지도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기유년에 사마시에 나아가 첫째로 붙었고 이듬해 경술년에 진사에 뽑혔다. 이윽고 전주 서기로 보임되었는데 정사를 굳세고 사납게 하니 동료가 꺼리고 시새워 참소를 입어 서울로 올라왔다.
임술년에 경주가 배반하매 조정이 삼군을 내어 쳤다. 군막에서 산관으로 급제한 이를 뽑아 글 짓는 자리를 채우려 하여 세 사람을 거쳤으나 다들 꾀를 내어 피하였다. 공만이 홀로 말하였다. 「신하가 되어 나라의 어려움을 피하는 것이 옳은가.」 마침내 군사를 따라갔다.
정묘년에 유관들의 천거를 입어 직한림원에 보임되었고 글이 빠른 것으로 여러 번 옮겼다. 을해년에 곧바로 우정언 지제고에 임명되었고, 기묘년에 공무의 일로 탄핵을 입어 나가 계양도호부 부사가 되었다. 한 해가 지나지 않아 예부낭중 기거주로 부름을 받았고, 얼마 되지 않아 보문각 대제에 임명되었다. 대제의 소임은 여느 재주로 감당할 바가 아니므로 때로 혹 비워 두기도 하던 자리다.
벼슬이 쌓여 추밀원 부사 좌산기상시 한림학사 승지에 이르렀다. 맏아들 함(涵)이 직한림이 되었으므로 보문각 학사로 고쳤고, 이어 정당문학 참지정사에 임명되었다. 공이 나이 늙었다 하여 물러나기를 아뢰었으나 임금이 윤허하지 않았다. 정유년에 또 표를 올려 물러나기를 굳고 간절히 비니, 금자광록대부 수태보 문하시랑 평장사 수문전 대학사 감수국사 판예부사 한림원사 태자태보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공의 사람됨은 너그럽고 점잖으며 곧은 대신이었다. 그때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사람 가운데 용」이라 하였다. 경전과 역사를 깊이 궁구하였을 뿐 아니라 그윽한 글과 외진 이야기며 부처의 책과 도가의 책에 이르기까지 두루 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늘그막에는 더욱 불법을 믿어 늘 능엄경을 외웠고, 또 세심경 읽기를 즐겨 대연(大衍)의 수를 궁구하였다.
공은 한 번 성균의 시험을 맡고 세 번 예부의 시험을 맡았는데 얻은 이가 다 그 시대의 이름난 사람이었으니, 죽순처럼 늘어선 인재의 성대함이 이만한 때가 없었다. 조서 짓는 일을 맡은 때로부터 재상에 이르기까지 무릇 나라의 임금 말씀과 조서며 높은 글과 큰 책이 다 한 손에서 나왔다. 비록 벼슬을 내려놓고 물러난 뒤에도 다른 나라와 오가는 표와 장, 부르는 조서의 글이 또한 공이 지은 것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돌보심이 더욱 무거워 달마다 녹을 내릴 때 벼슬에 있는 재상부와 똑같이 하였다. 또 유사에게 명하여 공이 지은 앞뒤 문집 쉰세 권을 가져다 장인을 모아 새겨 찍어 세상에 전하게 하였다. 이름이 중화와 오랑캐에까지 떨치고 총애가 예로부터 없던 바이니, 슬픔과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지러진 데가 없다 할 만하다.
공의 처음 휘는 인저(仁底)였는데 사마시에 나아가려 할 때 꿈에 규성(奎星)이 기이한 상서를 알려 주었으므로 이름을 고쳤더니 과연 첫째로 붙었다. 아직 관례를 하지 않았을 때 오세재(吳世才) 선생이라는 이가 있어 사람 인정하기를 삼갔는데, 한 번 보고 기이하게 여겨 말하였다. 「그대는 예사 사람이 아니다. 반드시 멀리 이를 것이다.」 급제하자 공은 그 등급이 낮은 것을 언짢게 여겨 취하여 하례하는 손에게 말하였다. 「과거 등급은 비록 낮으나 서너 번은 문생을 길러 낼 사람이 아니겠는가.」 자리에 있던 손들이 크게 웃었다. 아. 규성이 알려 준 일과 오공이 알아본 일과 공이 취하여 한 말이 어찌 기이하지 않은가.
벼슬을 풀고 집에 있으면서 늘 시와 술로 스스로 즐겼다. 신축년 칠월에 이르러 가벼운 병을 얻었고, 구월 초이틀에 서쪽을 향하여 옷을 입고 홀가분하게 세상을 떠났다. 누린 나이 일흔넷이었다. 임금이 부고를 듣고 몹시 슬퍼하여 유사에게 명해 상사를 갖추게 하고 사흘 동안 조회를 보지 않았으며, 문순공(文順公)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어 가까운 신하에게 명하여 뇌(誄)를 지어 그 덕을 드러내게 하였다. 그 말은 이러하다.
협주 2
右司諫鄭芝奉宣述。
우사간 정지(鄭芝)가 임금의 명을 받들어 지었다.
저본은 동도(東都)라 하였고 묘지명은 동경(東京)이라 하였으니 둘 다 지금의 경주다. 「동경」은 소리로 오늘의 도쿄로 들려 「경주」로 적었다. ― 옮긴이
英英我公。一代儒宗。賦形殊特。曰人中龍。神人報英。奎宿標祥。稟靈毓粹。不類於常。幼而力學。時號奇童。三敎奧旨。無不該通。首登上板。一中賢科。詩名籍籍。聞于中華。出佩州符。政績無倫。驟登翰苑。雄筆如神。諫垣叫闔。誥院演綸。藥言醫國。繡句驚人。修書敍事。信服強戎。潭潭相府。穆穆淸風。一掌成均。鸞鵠繽紛。三典禮闈。桃李芳芬。如何一旦。天喪斯文。縉紳庶士。涕泣瀾潸。鳳翼何附。龍鱗何攀。泰山其頹。士林凄然。上心悲悼。寵葬無前。命臣作誄。光于九泉。嗚呼哀哉。
빼어나신 우리 공은 한 시대 유학의 으뜸이었네 타고난 모습이 남달라 사람 가운데 용이라 하였네 신인이 뛰어남을 알리고 규성이 상서를 나타냈네 신령함을 받고 순수함을 길러 예사 사람과 같지 않았네 어려서 힘써 배워 그때 기이한 아이라 불렸네 세 가르침의 깊은 뜻을 두루 꿰뚫지 않은 것이 없었네 맨 윗자리에 처음 오르고 한 번에 진사과에 붙었네 시의 이름이 자자하여 중화에까지 들렸네 나가 고을의 수령 신표를 차니 정사의 자취가 견줄 데 없었네 한림원에 갑자기 올라 웅건한 붓이 귀신 같았네 간원에서 대궐을 향해 외치고 조서 짓는 관청에서 임금의 말씀을 폈네 약 같은 말로 나라를 고치고 수놓은 글귀로 사람을 놀라게 했네 글을 닦아 일을 펴니 굳센 오랑캐도 믿고 따랐네 깊고 깊은 재상의 관부에 화목하고 맑은 바람이 불었네 한 번 성균의 시험을 맡으니 난새와 고니가 어지러이 모였고 세 번 예부의 시험을 맡으니 복숭아와 오얏이 꽃답게 피었네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하늘이 유학의 도를 앗아 갔는가 벼슬아치와 뭇 선비가 눈물을 줄줄 흘리네 봉황의 날개에 어디로 붙으며 용의 비늘을 어디에 붙잡으랴 태산이 무너지니 선비의 무리가 처량하네 임금의 마음이 슬퍼하시어 장사의 은총이 전에 없었네 신에게 명하여 뇌를 짓게 하시니 구천에까지 빛나소서 아,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