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3 근폭집

종사관을 보내 길목의 마초와 군량을 갖추기를 청하다請遣從事官整齊一路蒭粮。啓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580자 · 낭독 4.6분

징비록 권3 근폭집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臣病勢日漸沉劇當此之際僵仆累日無以少效微勞罪當萬死數日前因有。召命力疾詣賓廳其後病益添加當其痛作之時一身如解流汗滿身不能自定一二日間差歇無望而唐兵一路粮餉調度等事日急一日雖已累次移文申勅而人心渙散守令之盡心者亦少恐臨時多致齟齬以誤大事不勝憂悶他餘措置自賓廳備邊司已皆詳盡區處矣大槪沿道各官見儲軍粮惟義州最優定州則雖名大邑而時存二百餘石龜城之穀若及期輸運則似可接濟臣意唐兵發行時自義州齎三日粮初日宿良策而龍川添給一日粮則三日粮猶在第二日宿林畔宣川又添給一日粮如良策則三日粮猶在到定州嘉山亦如之安州則以船隻輸運龍岡三縣之穀五六百石泊于老江下流唐兵臨到之時又分給于安州則是沿道自義州至安州皆以其處之穀支給而義州所賫三日之粮則依舊猶存是可及到於平壤賊若望大軍之來棄城南逃則平壤餘穀可以接濟假使不然唐兵旣到城下三縣之穀人負馬載不患難運計實無便於此者伏見遼東咨文亦以我國粮餉不敷至於賫持乾粮其委曲便易欲濟大事之意至矣以此明言曲折於唐將通情爲之則似無不從之理矣但馬料則持去似重當於各站備待請以此意議處何如前日康士雄之去臣卽令船運三縣白米六百石到定州若定州已輸運龜城之穀則雖非三縣之穀可以支給三縣之穀則姑令移泊于安州近處以待事甚便當議于大臣則其意亦然但必須別遣一人如宣傳官之類專掌爲之然後可以及時矣臣病歇則自當驅馳道路親自檢勅而不幸病勢如此從事官辛慶晉使之先期馳去整齊爲當故敢啓

신의 병세가 날로 깊어져, 이런 때에 여러 날 자리에 누워 작은 수고도 바치지 못하니 죄가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며칠 전 부르심이 있어 병을 무릅쓰고 빈청에 나아갔는데 그 뒤로 병이 더해졌습니다. 아픔이 일어날 때면 온몸이 풀리는 듯하고 땀이 온몸에 흘러 스스로 가누지 못하니, 하루 이틀 사이에 나아지기는 바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명나라 군사가 지나는 길의 군량을 마련하는 일은 하루가 다르게 급합니다. 이미 여러 번 공문을 보내 거듭 단단히 일렀으나 인심이 흩어져 마음을 다하는 수령도 적으니, 때가 닥쳐 어긋나는 일이 많아 큰일을 그르칠까 두려워 걱정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 밖의 조처는 빈청과 비변사에서 이미 자세히 처리하였습니다.

대개 길가 여러 고을에 지금 쌓인 군량은 오직 의주가 가장 넉넉하고, 정주는 큰 고을이라 하나 지금 남은 것이 이백여 석뿐이며, 구성의 곡식을 기한에 대어 옮기면 이어 댈 수 있을 듯합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명나라 군사가 떠날 때 의주에서 사흘 양식을 지니게 하고, 첫날 양책역(良策驛)에서 자면 용천에서 하루 양식을 더 주어 사흘 양식이 그대로 남게 하고, 이튿날 임반역(林畔驛)에서 자면 선천에서 또 양책역에서처럼 하루 양식을 더 주어 사흘 양식이 그대로 남게 하며, 정주와 가산에 이르러서도 그와 같이 하십시오. 안주는 배로 용강 등 세 고을의 곡식 오륙백 석을 실어 노강(老江) 아래에 대었다가 명나라 군사가 닿을 때 안주에서 또 나누어 주면, 의주에서 안주까지 길가에서는 모두 그곳 곡식으로 대어 주고 의주에서 지닌 사흘 양식은 그대로 남으니, 이것으로 평양까지 갈 수 있습니다.

적이 대군이 온다는 말을 듣고 성을 버리고 남으로 달아나면 평양에 남은 곡식으로 이어 댈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명나라 군사가 성 아래 이른 뒤에는 세 고을 곡식을 사람이 지고 말에 실어 나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니, 계책으로 이보다 편한 것이 없습니다. 삼가 요동에서 온 공문을 보니, 우리나라 군량이 넉넉하지 못하다 하여 마른 양식을 지니고 오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그 자상하고 편하게 하여 큰일을 이루려는 뜻이 지극합니다. 이로써 명나라 장수에게 사정을 밝게 말하고 뜻을 통해 하면 따르지 않을 리가 없을 듯합니다. 다만 말먹이는 지고 가기에 무거울 듯하니 마땅히 길목의 각 역참에 갖추어 두게 하십시오. 이 뜻을 의논해 처리하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전날 강사웅(康士雄)이 갈 때 신이 곧 세 고을 흰쌀 육백 석을 배로 정주에 옮기게 하였는데, 정주가 이미 구성의 곡식을 옮겨 왔다면 세 고을 곡식이 아니어도 댈 수 있으니, 세 고을 곡식은 잠시 안주 가까운 곳에 옮겨 대어 두고 기다리게 하는 것이 매우 편하고 마땅합니다. 대신에게 의논하니 그 뜻도 그러하였습니다. 다만 반드시 선전관 같은 이 한 사람을 따로 보내 오로지 맡게 한 뒤라야 때에 댈 수 있습니다. 신의 병이 나으면 마땅히 길에 달려 나가 몸소 살피고 단속하겠으나, 불행히 병세가 이러하니 종사관 신경진(辛慶晉)을 기한보다 앞서 달려가 갖추게 함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감히 아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