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효신서』를 올리다進紀効新書。啓
臣前在京都甞因李德馨得見唐將戚金所借紀効新書德馨又傳金之言曰爾國欲禦倭非先太傅法不可所謂先太傅卽金之父繼光嘉靖年間爲東南名將至今浙兵之强皆繼光所訓鍊臣略窺其書一二宏闊微密倉卒未能遍究端緒而要爲萬世不刋之書第以索還之急令吏輩數人分卷謄出携歸嶺南欲以活字印之而未及焉只又傅一本付監司韓孝純使留道內其初本仍在臣行槖中書畫未精且未粧䌙不足以上備。睿覽而書中所載皆今所講求而未得其方者若前此未經。上達則秘而不布亦甚可惜故敢此投進但當初讎校未畢間有錯字缺句而其論器械製造文字亦頗有難解處如蒙賜覽卽下備局更爲精校而其未曉處又使聰敏之人及此南將未還之前給難辨質至於布置營陣束伍分部之法尤我國將士所未料理亦當按此書而辨承口受以開迷味且仍令隨行於。天將營下目驗其指揮約束之狀了然無疑然後庶可擬倣摹效以求實用矣
신이 전에 서울에 있을 때 이덕형(李德馨)을 통해, 명나라 장수 척금(戚金)이 빌려준 『기효신서(紀効新書)』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덕형이 또 척금의 말을 전하기를 「그대 나라가 왜적을 막으려면 선태부(先太傅)의 법이 아니고는 안 된다」 하였습니다. 이른바 선태부는 곧 척금의 아버지 척계광(戚繼光)입니다. 가정(嘉靖) 연간에 동남쪽의 이름난 장수였고, 지금 절강 군사가 강한 것도 모두 척계광이 훈련한 덕입니다.
신이 그 책을 한두 가지 대강 엿보니 넓고도 세밀하여, 창졸간에 실마리를 두루 캐지는 못하였으나 요컨대 만세에 없앨 수 없는 책입니다. 다만 돌려 달라는 독촉이 급하여 아전 몇 사람에게 권을 나누어 베끼게 한 뒤 영남으로 가지고 돌아가 활자로 찍으려 하였으나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또 한 본을 베껴 감사 한효순(韓孝純)에게 주어 도내에 두게 하였고, 그 처음 본은 신의 행장 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글씨가 곱지 못하고 또 꾸며 매지도 않아 임금께서 보시기에는 모자라오나, 책에 실린 것이 모두 지금 강구하면서도 그 방법을 얻지 못한 것들입니다. 만일 전에 올려진 적이 없다면 감추어 두고 펴지 않는 것도 매우 아까운 일이므로 감히 이렇게 올립니다.
다만 처음에 교정을 마치지 못해 사이사이 틀린 글자와 빠진 구절이 있고, 병기 만드는 것을 논한 글도 자못 알기 어려운 데가 있습니다. 보아 주시거든 곧 비변사에 내려 다시 자세히 교정하게 하시고, 알기 어려운 곳은 총명한 사람을 시켜 남쪽 장수가 돌아가기 전에 물어 밝히게 하십시오. 진을 벌여 세우고 대오를 묶어 나누는 법은 더욱 우리나라 장수와 군사가 헤아리지 못하던 것이니, 또한 이 책을 살펴 입으로 배워 받아 어두운 것을 열어야 합니다. 또 명나라 장수의 진영에 따라다니며 지휘하고 단속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아 환히 의심이 없게 된 뒤라야, 본떠 실제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협주 1
癸巳四月二十九日在海州
계사년 사월 스무아흐렛날, 해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