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3 근폭집

요동에 회답하는 자문의 말을 아뢰는 계陳遼東回咨措辭。啓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376자 · 낭독 3.5분

징비록 권3 근폭집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伏見遼東都司咨文我國欲復不共戴天之讎。天朝亦非不諒其情而亦以如此者不過宋經略當初已失機會今則留兵已撤再擧勢難以是姑出於下策欲以封貢之說覊縻賊勢庶幾賊退於萬一而。中朝科道之議據正爭論故於此無以處之欲使我國靜而俟之當初猶不分明說破而今則直說兵粮不能應封貢又不許朝鮮之事去矣不知彼國之人何其愚也云云其意可見矣大抵我國之請於。天朝自始至今有三大節皆機關所係初則平壤旣破大兵長驅堅請勦滅而不容他議一節也其後提督之軍雖回而南兵萬餘留往南邊我國粮餉亦未蕩竭當此之時急請添兵一擧掃蕩又一節也今則粮也兵也必須皆賴於。天朝而觀。天朝之事似無應副之理事勢危急日甚一日賊若未退則國有必亡之勢到此雖請之勤勤終無所益也惟當姑爲款待任其所爲更觀事勢如何又一節也今此回答但云。天朝雖欲以封貢退賊而小邦則以爲恐無退歸之理以是爲慮惟願深思長策使小邦期於保全云云而勿爲一定之言浪觸彼怒而無益於事似爲便當

삼가 요동도사(遼東都司)의 자문(咨文)을 보건대 이러하였습니다.

「조선이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를 갚고자 하는 것을 천조(天朝)에서도 그 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송경략(宋經略)이 당초에 이미 기회를 잃은 데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머물던 군사도 이미 철수하여 다시 일으키기가 형세상 어려우므로, 이 때문에 짐짓 아랫길에서 나와 봉공(封貢)의 말로 적의 형세를 얽어매어 만에 하나 적이 물러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조(中朝) 과도관(科道官)의 의논이 바름을 근거로 다투는 까닭에 이에 처리할 길이 없어, 조선으로 하여금 가만히 기다리게 하려는 것이다.」

당초에는 그래도 분명히 말하여 깨뜨리지 않더니, 이제는 군사도 군량도 응할 수 없고 봉공도 또한 허락하지 않는다고 바로 말하고는 「조선의 일은 글렀다. 저 나라 사람이 어찌 그리 어리석은지 모르겠다」 하니, 그 뜻을 알 만합니다.

대저 우리나라가 천조에 청한 일은 처음부터 이제까지 큰 고비가 셋이 있는데 다 기틀에 매인 것입니다. 처음에 평양이 이미 깨어지고 대군이 멀리 몰아갈 때 굳이 적을 무찔러 없애기를 청하고 다른 의논을 용납하지 않은 것이 한 고비요, 그 뒤에 제독(提督)의 군사가 비록 돌아갔으나 남병(南兵) 만여 명이 남아 남쪽 변방으로 갔고 우리나라 군량도 아직 다 마르지 않았으니 이때를 당하여 급히 군사를 더하여 한 번에 쓸어 없애기를 청한 것이 또 한 고비입니다. 이제는 군량도 군사도 반드시 천조에 힘입어야 하는데 천조의 일을 보건대 응하여 도와줄 이치가 없는 듯하고, 사세가 위급하여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니 적이 만일 물러가지 않으면 나라에 반드시 망할 형세가 있습니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비록 부지런히 청한들 마침내 이로울 것이 없으니, 오직 마땅히 짐짓 정성껏 대접하여 그 하는 바에 맡기고 다시 사세가 어떠한지를 보아야 할 것이니 이것이 또 한 고비입니다.

이번 회답에는 다만 「천조에서 비록 봉공으로 적을 물리치려 하시나, 저희 나라는 적이 물러갈 이치가 없을까 두려워 이를 걱정합니다. 오직 원컨대 긴 계책을 깊이 생각하시어 저희 나라로 하여금 기어이 보전되게 하여 주소서」라고만 하고, 한쪽으로 정한 말을 하여 부질없이 저들의 노여움을 건드려 일에 이로울 것이 없게 하지 않는 것이 온당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