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징비록 › 권4 근폭집

외방 진관의 제도를 거듭 밝히기를 아뢰는 계申明外方鎭管之制。啓

징비록 懲毖錄 · 류성룡(柳成龍) · 1633년 간행 (임진왜란 뒤 지음) · 단락 1 · 한자 335자 · 낭독 2.6분

징비록 권4 근폭집 임진왜란이 끝난 뒤 영의정 류성룡이 제 눈으로 본 것을 적어 남긴 기록.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뒷근심을 삼간다」는 뜻으로 이름을 붙였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조정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변명 없이 적었다. 이순신을 천거한 일, 명나라 군사와의 실랑이, 백성이 겪은 참상이 그대로 실렸다.

外方鎭管之法乃是軍政之大者近日此制久廢渙散無統終止於土崩瓦解不可收拾已可痛恨前者因本司。啓請特爲下書知委于各官而積年弊習猶痼於人之心目不能改舊圖新爲鎭管守令者亦憚於作爲安於姑息凡檢勅屬邑修擧軍政等事尙皆置之尋常監司又不聞董責之事悠悠度日事無可爲者姑以忠淸一道言之則忠州鎭管之法修擧則鳥嶺竹嶺之門戶固矣淸州鎭管之法修擧則黃澗永同秋風等處把截之勢可以成形公州鎭管之法修擧則錦江一帶可以無虞洪州鎭管之法修擧則內浦沿海等地皆爲可守此其事簡而功多不言而可知矣奈何人之所見滯於近規終不能恢拓建置以振頹靡之勢此臣等之所以深憂永歎而不能自己者也今公州牧使鄭文孚已下去文孚才器可以任此請以此意別爲。下諭于本道監司使以前啓下辭緣申勅諸鎭而且令鄭文字專治所屬軍政整頓頹圯使有成緒令列邑取效行之何如

외방 진관(鎭管)의 법은 곧 군정의 큰 것입니다. 요사이 이 제도가 오래 폐하여 흩어지고 거느림이 없어, 마침내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지듯 하여 수습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미 통한할 만합니다. 앞서 비변사(本司)의 계청으로 특별히 글을 내려 각 고을에 알렸으나, 여러 해 쌓인 나쁜 버릇이 오히려 사람의 마음과 눈에 고질이 되어 옛것을 고쳐 새것을 꾀하지 못합니다. 진관의 수령 된 자도 하기를 꺼려 구차한 안일에 편안히 여겨, 무릇 속읍을 검칙하고 군정을 닦아 일으키는 일을 아직도 다 예사로 버려 두며, 감사 또한 독책한다는 말이 들리지 않아 하염없이 날을 보내니 일에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우선 충청 한 도로 말하겠습니다. 충주 진관의 법을 닦아 일으키면 조령과 죽령의 문호가 굳어지고, 청주 진관의 법을 닦아 일으키면 황간·영동·추풍 등지를 막아 지키는 형세가 모양을 이룰 수 있으며, 공주 진관의 법을 닦아 일으키면 금강 일대에 근심이 없을 수 있고, 홍주 진관의 법을 닦아 일으키면 내포와 바닷가 등지를 다 지킬 수 있습니다. 이는 그 일이 간략하고 공이 많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사람의 소견이 가까운 규례에 막혀 끝내 넓혀 세워 무너진 형세를 떨치지 못하니, 이것이 신들이 깊이 근심하고 길이 탄식하며 스스로 그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이제 공주목사 정문부(鄭文孚)가 이미 내려갔는데 정문부의 재주와 그릇이 이를 맡을 만합니다. 청컨대 이 뜻으로 따로 그 도 감사에게 하유하시어, 앞서 계하하신 사연으로 여러 진을 거듭 신칙하게 하시고, 또 정문부로 하여금 소속 군정을 오로지 다스려 무너진 것을 정돈하여 실마리를 이루게 하며 여러 고을이 본받아 행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협주 1

저본은 鄭文字이나 鄭文孚의 잘못으로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