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강가를 지키는 절목의 편의를 아뢰는 계陳平安道沿江防守節目便宜。啓
臣病勢沉劇精神昏塞思慮所得率多顚錯西邊之事日夜關心伏見接伴使沈喜壽狀啓則義州等處人心亦頗騷擾凡人心先怯則智勇俱竭雖有䇿應之事多失機會未能濟事此可慮之大者也沿江一帶自江界至義州數百里之間水上則有虞候朴名賢水下則有助防將李時言而兵使留鎭昌州兩頭繼援又有別將金應緘金宗得等今將下去朝廷指授則不過如此若其總計一道軍兵之數因其防禦緊歇而或添或减預爲約束先定戰守之計臨機處置則當專責於本道當事之人政不可從中遙制也至於義州則以接連上國之故而意其防歇未免抽出其處之兵分防水上故喜壽目見空虛之狀而有此狀啓此亦遠慮也高麗時西方防守旣有兵馬使又有分道將軍蓋以鴨江一帶上下形勢遼遠賊之所發未知在於何處故設爲分道之將使之各領所屬以爲掎角馳援之䇿今之別將與此相同獨義州無此則當有以處之道內閒散武臣中稍爲可用者有李福男方在寧邊云此人雖在罪廢之中而其才則稍可倚任若稱爲助防將使之馳赴義州協同州官及鎭管所屬龍川鐵山砲手限解氷留守義州似爲無妨義州城子濶遠中隔高阜不能通望守之似難果如喜壽狀啓矣但地勢亦多據險處惟北門外及西門至南門東門頗在平地此處若相其城勢設爲砲樓而多備火砲器械則可以守之矣夫砲樓之制乃守城妙法事急則不必用石又不必起樓只以大木爲柱而三面以板障之似防牌之制中穿孔穴則亦可以制敵而救一時之急矣北虜攻城與南賊有異北虜則每於馬上人持一帒土一時俱進積於城下頃刻與城平而人馬踐踏踰越且兵皆鐵甲馬亦被甲故弓箭不能傷如非火砲則不可制義州所在天地字火砲往年攻平壤時多數輸來今未知還爲輸去此亦急速收拾計其城堞而均分排設預令事知火砲匠習放以壯聲威且使遠近知其有備則亦足以鎭定民心讋服虜情也滿浦僉使柳濂自初固有不稱之議而緣胡人宴享臨迫姑爲仍留近日頗聞老乙可赤二將宴享開諭時有恇怯之容江界府使許頊以爲憂云此言未知信否以人器料之則應或有此僉使可堪人得之甚難以臣意料之則李慶濬似可堪此當此機關緊急之時得人最關故李福男李慶濬雖在罪錮之中而臣不敢不達愚見也大抵軍機之事勿論戰與守皆當以部伍登治爲主我國爲將者於守城一事尤甚疎𤄃其於分配垜堞簡別精壯之規皆不料理頭緒紛亂臨時顚倒有同趨市之人故軍數多而城不能守變後各處陷城之患政坐如此江邊有城處預爲申勅如紀效新書所言每五垜爲一伍五十垜爲一隊隊各有將垜各有預定之軍平時依法操鍊臨急如行熟路衆力合一又必靜暇不撓城中寂無人聲然後可無僨敗之患此等事雖在將帥所自爲而亦不可不爲申勅也臣旣受西方之任所當早爲發行勉竭駑材故欲力疾就途而朝議難之不幸宿疾重發危喘如縷呻吟私室公私憂慮焦煎于心而不知所出昏瞀之中招臣從事口占爲文辭不達意然亦係一時一得之愚下備邊司議處何如
신은 병세가 깊고 위중하여 정신이 어둡고 막혀, 생각하여 얻은 바가 대개 뒤집히고 어그러진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서쪽 변방 일이 밤낮으로 마음에 걸립니다. 삼가 접반사 심희수(沈喜壽)의 장계를 보니 의주(義州) 등지의 인심이 또한 자못 소란하다 합니다. 무릇 사람 마음이 먼저 겁을 내면 슬기와 용기가 다 말라, 비록 응할 계책이 있어도 기회를 많이 놓쳐 일을 이루지 못하니, 이것이 염려할 만한 큰 것입니다.
강가 일대는 강계(江界)에서 의주에 이르는 수백 리 사이인데, 물 위쪽에는 우후(虞候) 박명현(朴名賢)이 있고 물 아래쪽에는 조방장 이시언(李時言)이 있으며, 병사는 창주(昌州)에 진을 머물러 양쪽 끝을 이어 돕고, 또 별장 김응함(金應緘)·김종득(金宗得) 들이 이제 내려가려 합니다. 조정에서 지시하여 준 것은 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도 군사의 수를 모두 헤아려 방어가 긴하고 헐한 데 따라 더하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 미리 약속을 세워 싸우고 지킬 계책을 먼저 정하고 기틀을 따라 처치하는 것은 마땅히 그 도에서 일 맡은 사람에게 오로지 맡길 것이요, 서울에서 멀리 조종할 수는 없습니다.
의주로 말하면 상국(上國)에 잇닿은 까닭에 그 방어가 헐하리라 여겨 그곳 군사를 뽑아내어 물 위쪽에 나누어 지키게 함을 면하지 못하였고, 그러므로 희수가 텅 빈 모양을 눈으로 보고 이 장계를 올린 것이니 이 또한 먼 앞날을 헤아린 것입니다. 고려 때 서쪽을 지킴에는 병마사가 있고 또 분도장군(分道將軍)이 있었습니다. 대개 압록강 일대의 위아래 형세가 아득히 멀어 적이 일어날 곳을 알 수 없으므로, 도를 나눈 장수를 두어 저마다 딸린 군사를 거느리고 뿔처럼 버티며 달려가 돕는 계책을 삼은 것입니다. 이제의 별장이 이와 같으나 유독 의주에만 이것이 없으니 마땅히 조처함이 있어야 합니다.
도 안의 한산한 무신 가운데 조금 쓸 만한 자로 이복남(李福男)이 이제 영변(寧邊)에 있다 합니다. 이 사람이 비록 죄로 폐하여진 가운데 있으나 그 재주는 조금 믿고 맡길 만합니다. 만일 조방장이라 일컬어 의주로 달려가게 하여 고을 원과 진관에 딸린 용천(龍川)·철산(鐵山)의 포수와 힘을 합해 얼음 풀릴 때까지 의주에 머물러 지키게 하여도 해로울 것이 없을 듯합니다.
의주의 성은 넓고 멀며 가운데 높은 언덕이 막혀 두루 바라볼 수 없어 지키기가 어려울 듯하니 과연 희수의 장계와 같습니다. 다만 지세에 험한 데를 의지한 곳도 많고, 오직 북문 밖과 서문에서 남문·동문에 이르는 데가 자못 평지에 있습니다. 이곳은 만일 그 성의 형세를 살펴 포루(砲樓)를 만들고 화포와 무기와 기구를 많이 갖추면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릇 포루의 제도는 곧 성을 지키는 묘한 법이니, 일이 급하면 굳이 돌을 쓸 것도 없고 또 굳이 다락을 세울 것도 없습니다. 다만 큰 나무로 기둥을 삼고 세 면을 널로 막아 방패의 제도와 같이 하고 가운데에 구멍을 뚫으면, 또한 적을 누르고 한때의 급함을 구할 수 있습니다.
북쪽 오랑캐가 성을 치는 것은 남쪽 적과 다릅니다. 북쪽 오랑캐는 늘 말 위에서 사람마다 흙 한 자루를 가지고 한꺼번에 나아가 성 밑에 쌓아 잠깐 사이에 성과 나란해지면 사람과 말이 밟고 넘습니다. 또 군사는 다 쇠갑옷을 입고 말도 갑옷을 입은 까닭에 활과 살로는 상하게 하지 못하니 화포가 아니면 누를 수 없습니다. 의주에 있던 천(天) 자·지(地) 자 화포는 지난해 평양을 칠 때 많이 실어 왔는데 이제 도로 실어 갔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것도 급히 거두어 그 성가퀴를 헤아려 고르게 나누어 벌여 두고, 미리 일 아는 화포장(火砲匠)을 시켜 쏘기를 익히게 하여 소리와 위엄을 씩씩하게 하고, 또 멀고 가까운 데서 채비가 있음을 알게 하면, 또한 민심을 가라앉히고 오랑캐의 마음을 눌러 굴복시키기에 넉넉합니다.
만포첨사(滿浦僉使) 유렴(柳濂)은 처음부터 진실로 마땅치 않다는 의논이 있었으나, 오랑캐를 잔치로 대접할 일이 임박한 까닭에 우선 그대로 두었습니다. 요사이 자못 들으니 누르하치(老乙可赤)의 두 장수를 잔치로 대접하고 타이를 때 겁내는 낯빛이 있어 강계부사 허욱(許頊)이 근심한다 하는데, 이 말이 미더운지는 알지 못합니다. 사람 그릇으로 헤아리면 응당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첨사를 감당할 사람은 얻기가 몹시 어려운데 신의 뜻으로 헤아리면 이경준(李慶濬)이 이를 감당할 듯합니다. 이 기틀이 긴급한 때를 당하여 사람 얻는 것이 가장 관계되므로, 이복남·이경준이 비록 죄로 금고된 가운데 있으나 신이 감히 어리석은 소견을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저 군사 기틀의 일은 싸우는 것과 지키는 것을 물을 것 없이 다 대오를 가지런히 다스림을 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장수 된 이는 성 지키는 한 가지 일에 더욱 심히 엉성하여, 성가퀴를 나누어 맡기고 날래고 굳센 이를 가려내는 법을 다 헤아리지 않습니다. 실마리가 어지럽고 때를 당하여 뒤집혀 저자로 몰려드는 사람과 같은 까닭에, 군사 수는 많아도 성을 지키지 못하니 난리 뒤에 곳곳이 성을 잃은 근심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강가에 성이 있는 곳은 미리 거듭 신칙하여 『기효신서(紀效新書)』에 이른 바와 같이 성가퀴 다섯을 한 오(伍)로 삼고 쉰을 한 대(隊)로 삼아, 대마다 장수를 두고 성가퀴마다 미리 정한 군사를 두게 하소서. 평시에 법대로 조련하면 급할 때 익은 길을 가듯 하여 뭇 힘이 하나로 합할 것입니다. 또 반드시 고요하고 넉넉하여 흔들리지 않아 성안에 사람 소리가 없은 뒤에라야 무너져 패할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비록 장수가 스스로 할 바에 있으나 또한 거듭 신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이 이미 서쪽의 소임을 받았으니 마땅히 일찍 길을 떠나 둔한 재주를 다 쏟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을 무릅쓰고 길에 오르고자 하였으나 조정의 의논이 어렵게 여겼습니다. 불행히 묵은 병이 도져 위태로운 숨이 실낱같아 사삿집에서 신음하며, 공사 간의 근심이 마음을 태우나 나올 바를 알지 못합니다. 어지러운 가운데 신의 종사관을 불러 입으로 불러 글을 지으니 말이 뜻을 다하지 못하였으나, 또한 한때 하나 얻은 어리석은 소견에 매인 것이니 비변사에 내려 의논하여 처치하게 하심이 어떠하겠습니까.
협주 3
乙未十一月二十二日
을미년 십일월 스무이튿날.
저본은 老乙可赤. 누르하치를 이르는 당시 표기.
저본의 𤄃는 어그러진 글자로, 뜻만 살려 「엉성하여」로 옮김.